-2년째 갈등만 되풀이, 소비자 인내심 시험하나
원래는 2019년에 갈등이 끝났어야 했다. 하지만 거의 2년 동안 핑퐁 게임을 했다. 대기업, 엄밀히 보면 현대기아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 얘기다. 중고차 업계는 막았고 현대차는 뚫으려 했다. 그리고 소비자는 오히려 현대차의 진출을 반겼다. 그럼에도 중고차 업계 반대가 워낙 극심해 중소기업벤처부는 저울질했다. 그리고 스스로 결론을 내는 것보다 갈등 해결에 나서는 누군가가 있다면 공을 넘겼다. 그 중 동반성장위원회는 진출을 허용했다. 그러나 중기부가 잠시 망설이는 사이 을지로위원회로 알려진 여당이 중재에 나섰고 무산됐다. 다시 중기부로 공이 넘어왔지만 이것도 잠시, 결국 생계형 적합업종 심의위원회로 이관시켰다. 한 마디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다시 처음부터 논의를 해보라는 것과 같다.
중고차 시장을 놓고 밥그릇 싸움이 치열한 배경은 시장 규모가 작지 않아서다. 하지만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제도적으로 다양한 표준 거래 기법을 도입했지만 쉽게 통하지 않는 이유는 같은 제품을 저렴하게 사려는 소비자와 비싸게 내놓는 판매자의 욕심이 서로 충돌하는 탓이다. 그런데 "중고"라는 점에서 제품의 가치는 천차만별이고 정보력 측면에선 판매자가 우위에 있다. 그래서 가끔 누가 봐도 형편없는 중고차를 터무니없는 가격에 구입해 화제가 되고 소비자 불신이 쌓인다.
물론 대기업이 진출한다고 이런 거래 관행이 단숨에 고쳐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제품의 가치 표준화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고 그만큼 분쟁도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 여론 조사는 소비자도 대기업 진출을 적극 반긴다. 그럼에도 진출 여부가 쉽사리 결정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진출에 찬성하는 소비자의 영향력이 쉽게 측정되지 못하는 탓이다. 즉, 찬성(제조사)과 반대(중고차업계)는 윤곽이 뚜렷한 집단인 반면 "소비자"는 광의의 개념으로 정책 또는 정치적 영향력이 낮은 탓이다. 그래서 "소비자"라는 단어는 설득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수식어로 사용되는 단어일 뿐 구체적인 판단 지표는 되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번 갈등에서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여론 조사의 결과가 대부분 같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전국 1,000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80%는 중고차 시장 개선이 필요하고, 56%는 제조사의 진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19세 이상 성인 1,000명 대상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3.4%가 찬성에 손을 들었다. 지난달 전경련 요청에 따라 모노리서치가 조사한 결과 또한 2030세대의 53.6%가 제조사의 중고차 사업 진출에 찬성했다. 정부와 업계의 시각은 "찬성 vs 반대"가 팽팽한 것 같지만 정작 중고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은 "찬성"에 힘을 실은 셈이다.
-중고차, 누구라도 소비자 될 수 있어
-중요한 것은 투명 거래 및 가치 산정
하지만 여전히 양측 갈등에서 소비자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정작 실체가 없는, 그래서 측정되지 못하는 집단이지만 의사 표시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표시되는 "찬성" 의견은 외면되기 일쑤다. 앞서도 언급했듯 "소비자"는 개념만 존재할 뿐 실체가 없어 정책 또는 정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어서다.
그렇다면 이대로 놔두는 게 최선일까? "소비자"라는 대상이 불문명해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다 고 적당히 넘어가면 되는 걸까? 자칫 사람의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는 기계가 "자동차"라는 점을 알면서도 제품 신뢰도를 높이자는 목소리에 귀를 막아야 할까? 가끔 사기 중고차에 속아 울분을 표출하며 "화제"가 되는 주인공이 지정돼 있을까?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다는 점에서 이번에는 최종 결론이 도출돼야 한다. 결정을 미루는 것 자체가 소비자에 대한 직무유기와 다름 없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