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저감"과 "중립" 따라 제품 대응
요즘 자동차업계의 화두는 이른바 "넷-제로(Net-Zero)"로 명명되는 "탄소 중립"이다. 대기 중 온실가스 순배출량이 "0"이 되도록 배출량과 흡수량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하려면 배출되는 탄소는 줄이되 흡수하는 탄소는 늘려야 한다. 그래서 탄소 중립의 시작은 탄소 저감이다.
여기서 혼동이 일어난다. 여전히 내연기관 중심의 이동 산업에서 재빨리 전기차로 전환하면 탄소 중립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다시 말해 현실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탄소 저감인데 마치 배터리 전기차를 탄소 중립의 매개체로 여기는 시각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게다가 탄소 중립은 각 나라가 주력으로 사용하는 에너지, 그 중에서도 발전 능력 및 연료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전력이 부족한 나라에 전기차를 보급해봐야 사용조차 못할 수 있는 탓이다.
이와 관련, 최근 일본 토요타그룹이 흥미로운 전략을 내놨다. 지난 14일 토요타 아키오 회장은 미래 BEV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친환경차를 각 시장에 투입할 때 해당 지역의 주력 에너지 수급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언급을 내놨다. 동시에 전기차를 보급할 때는 발전 연료도 함께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을 꺼내 들었다. 지금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동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의 저감이고, "중립"이 되려면 발전 에너지의 수급 및 종류가 중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낸 것이다. 그래야 국가별로 투입하는 제품의 주력 동력원을 구분할 수 있어서다.
실제 토요타는 오는 2030년 연간 350만대의 전기차 판매 목표를 제시하기 전부터 각 나라의 에너지 정책을 오랜 시간 주목해 왔다. 그리고 지난 11월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기후정상회의(COP26)에 참석한 각국 대통령이 친환경 정책을 표명하자 곧바로 전기차 전략을 발표했다. 미국 내 BEV 투입도 바이든 대통령이 관용차 60만대를 모두 BEV로 바꾸겠다는 행정 명령에 서명하자 정책 확신을 가졌다고 털어놨다. 2035년까지 무려 80조원이 투자되는 그룹의 미래 전략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국가별 미래 정책의 견고성을 철저하게 확인해야 했던 셈이다.
그 결과 토요타는 미국 시장에 HEV, PHEV, BEV를 지역에 따라 대응키로 했다. 미국의 동부와 서부는 충분한 전력 공급이 가능해 BEV가 정착할 수 있지만 중부는 지역에 따라 전력 공급 능력이 달라 HEV 또는 PHEV가 오히려 적절하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브라질은 바이오에탄올이 주력으로 사용 중이어서 BEV보다 여전히 HEV가 적절하며 유럽은 PHEV 및 BEV로 대응한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배터리는 내재화 및 외부 조달을 함께 활용한다. 물론 둘 중 무게 중심은 내재화로 기울어 있는데 배터리 셀 제조에 필요한 원자재를 이미 확보한 점이 크게 작용했다. 연간 350만대의 BEV 공급 목표를 달성하려면 280GWh의 용량이 필요한 만큼 원자재의 사전 확보는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탓이다.
그럼에도 토요타의 걱정은 남아 있다. 바로 가격이다. 아키오 회장은 전기차 가격을 내연기관보다 낮추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 솔직한 입장도 밝혔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내세운 것이 고효율 제품 전략이다. 값비싼 배터리를 적게 쓰면서 1회 충전 거리를 최대한 늘려 원가를 낮추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방법이 이날 함께 공개된 전기차 bZ 라인업이다. 2022년 소형 SUV 형태로 출시될 bZ의 궁극적인 효율 목표는 ㎾h당 8㎞로 현대차 아이오닉5의 5.1㎞보다 월등한 주행거리다. 이 말은 효율에서 답을 찾아야 배터리 사용이 줄어 BEV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쉽게 보면 토요타가 BEV에 대한 소비자 관심을 1회 충전 후 주행거리가 아닌 내연기관과 마찬가지의 단위효율, 즉 ㎾h당 주행 거리로 전환시키겠다는 공개적 선언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탄소 부문은 "저감"을 우선하고 이후 "중립"으로 넘어간다는 계획이다.
이런 행보는 대부분 오랜 시간 토요타의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다. 운송 수단의 주력 에너지가 언젠가 전기로 모두 바뀌겠지만 토요타는 전환 과정에 필요한 시간도 오래 걸릴 것으로 보고 1996년부터 HEV에 주력해 왔다. 그리고 HEV 전략은 성공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BEV가 쏟아져도 친환경차 부문에선 여전히 HEV 판매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래 전략이 치밀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래서 토요타는 BEV에서 늦었다는 평가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수많은 제조사가 앞다퉈 BEV를 쏟아낼 때 시장으로 표현되는 각 나라의 주력 에너지, 그리고 발전 연료의 전환 정책의 확고함이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전동화는 말 그대로 이동 수단의 형태가 바뀌는 게 아니라 이동에 필요한 에너지의 전환이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