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은 모두의 욕망이자 최소 생존 가치
문제의 정의는 매우 단순하고 명료하다. 몸이 불편한 장애인도 비장애인들처럼 좋은 바닷가 풍경을 보며 생선회를 먹고 싶다. 저녁마다 TV에서 방영되는 맛집을 찾아가 함께 즐기고 싶다. 등산 프로그램을 보며 정상에 우뚝 서려는 마음도 같고 캠핑장의 모닥불을 보며 불멍을 때리고 싶은 것도 차이가 없다. 그런데 다른 것이 있다. 장애인은 기본적인 이동 자체가 쉽지 않다.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도 쉬운 "이동"이 어려워 야외 활동은 엄두도 못 낸다. 특히 휠체어를 이용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비장애인이 두 발로 계단을 가볍게 오르내릴 때 휠체어는 바퀴로 굴러가는 탓에 계단은 오히려 장애물이다.
그래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법률도 있다. 이동권은 장애 여부를 가리지 않는 국민적 기본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가 기본 이동권의 가치를 높일 때는 우선 순위를 두기 마련이다. 절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비장애인의 이동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장애인이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왜냐하면 이동권은 돈과 직결되는 요소인 탓이다. 계단 옆에 휠체어 전용 도로를 설치하는 것도 비용이고, 어쩌다 탑승하는 장애인을 위해 통제된 요금을 받아야 하는 운송사업자에게 값비싼 저상버스 도입은 곧 비용 낭비(?)와 같다. 그래서 장애인 홀로 이동이 가능한 "특별교통수단"을 자치단체마다 운영하고 있다. 버스가 어려우면 승합차를 개조한 전용 택시를 이용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운용된다.
그런데 해마다 휠체어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가 늘어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1,510만명에 달했던 교통약자는 지난해 1,540만명으로 증가했다. 인구 고령화 탓이다. 다리에 힘이 빠져 걷지 못하고 휠체어를 타는 노령 장애인이 증가했다. 그리고 교통약자 숫자는 해마다 커지는 중이다. 그러니 지자체도 예산 운용에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묘수를 찾아냈다. 장애인 전용(장콜), 비장애인 전용(일반 택시)으로 나눠진 이용을 합칠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자면 택시로 사용되는 자동차에 휠체어 탑승 시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장애인이 탑승할 때는 정부가 요금만 일부 지원하면 된다. 비장애인이 주로 탑승하는 택시에 장애인도 탈 수 있어 모두가 "윈-윈"이다.
하지만 험난한 장벽이 있다. 기본적으로 겸용 이동 수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일부 자치단체가 겸용 승용차를 도입하려고 애썼지만 국내에선 겸용 자동차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 제조사에 요청을 해봤다. 그러나 제조사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적은 수요를 위해 수 천억원에 달하는 개발비를 쏟아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이 주목받았다. 영국은 택시 이용에 있어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이 없다. 자치단체 조례에 택시로 사용되는 자동차는 반드시 휠체어 탑승 시설을 갖추도록 규정했다. 한 마디로 의무 사항이다. 그래서 런던의 모든 택시를 우리 법률 용어로 표현하면 모두가 "특별교통수단"이다. 아예 제도적으로 규정을 해놓으니 자동차회사도 휠체어 탑승 시설을 기본적으로 넣어 판매했다. 이 과정에서 자치단체는 택시 사업자의 구입비를 지원했다. 차라리 구입비를 지원하는 것이 전용으로 운영하는 것보다 예산 측면에서 월등히 효율이 높았기 때문이다. 런던을 시작으로 영국 전역에 조례가 확산됐다.
그러자 한국에도 영국 겸용 자동차가 도입돼 내년 전격 투입을 앞두고 있다. 여전히 장애인들의 이동 수요를 모두 충족할 수 없지만 민간 기업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청각 장애인을 운전기사로 고용한 플랫폼 모빌리티 사회적기업 코액터스 이야기다. 오히려 정부가 앞장 서 해결해야 할 기본 이동권 확보를 위해 조그만 스타트업이 보편적 이동 가치를 내걸고 도전키로 결정했다. 배터리 기반의 전기차에 일부 발전용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겸용 자동차 가격은 비싸다. 장애인만 이동시키면 수익이 나지 않을 수 있어 비장애인도 이동을 시키겠다고 한다.
그래도 수익을 내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코액터스가 LEVC TX5(일명 런던 블랙캡)를 도입한 배경은 늘어나는 장애인 때문이다. 아무도 겸용 이동 수단을 도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통약자는 증가하고, 자치단체는 예산 문제로 전용 택시를 늘리지 못하니 민간 기업이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장기적인 솔루션을 찾겠다는 의지다. 그리고 첫 번째 물량인 두 대 도입은 그 시작을 선포하는 의미이자 우리 사회의 화두인 ESG의 실천, 그리고 출근길 지하철을 막아섰다며 손가락질 받던 장애인들의 외침에 울림을 주는 행보다. 수백 억원, 수천 억원의 이익을 일으키는 대기업도 당장 돈이 안된다며 외면한 일에 도전하는 코액터스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그들은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가치에 투자했고 반드시 결실을 맺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런데 차가 도입되면 장애인보다 비장애인들이 더 좋아할 것 같다. 엄밀하게는 비장애인들이 타는데 장애인도 타는 겸용이니 말이다.
권용주(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