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중고차의 무리수(?)에 뿔난 제조사

입력 2021년12월28일 00시00분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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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차 판매권 요구에 제조사 진출 강행

 연간 거래되는 250만대의 중고차 물량에서 10%인 25만대 가량은 제조사를 통해 거래하되 2024년까지 단계적으로 늘리는 것으로 합의가 됐다. 그런데 중고차 매매사업자가 반기를 들었다. 250만대 중에서 매매사업자를 통해 거래되는 물량은 110만대에 그치는 만큼 10%는 11만대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제조사는 중간 수준인 180만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랬더니 중고차 업계는 진입은 3년 후부터 하되 18만대의 중고차를 제조사가 직거래하면 자신들의 거래 물량이 줄어드는 만큼 신차 18만대를 판매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제조사는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또 다른 쟁점은 중고차의 매입이다. 중고차 업계는 소비자가 타던 차를 처분하고 새 차를 살 때 "5년 또는 10만㎞ 이내" 동일 브랜드의 중고차만 제조사가 취급하고 브랜드가 다르면 중고차 업계가 만든 플랫폼으로 넘기라고 했다. 예를 들어 기아차 보유자가 현대차를 새로 구입할 때 타던 차는 중고차 업계로 넘기라는 뜻이다. 그러나 제조사는 기아차 보유자가 타던 차를 매입하는 조건으로 현대차를 살 때 소비자 혜택을 줄 수 있어 반대했다. 

 여기서 짚어볼 논점은 중고차 소비자의 개념 정의다. 법적 정의는 애매하지만 일반적으로 중고차 시장에서 "소비자"는 누군가 타던 차를 구입해서 직접 운행하는 사람으로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중고차 매매사업자와 제조사는 모두 중간의 유통, 또는 매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역할일 뿐 최종 소비자는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동일한 유통 사업자 가운데 누가 최종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것인지 판단하면 된다. 그리고 동반성장위원회는 양 쪽 모두라는 결론을 냈다. 그런데 정부와 정치권이 선거를 고려해 너무 복잡한 셈법을 적용했던 게 문제다. 

 소비자 속성은 단순하다. 타던 중고차는 비싸게 처분하되 정작 중고차를 구매할 때는 저렴한 가격을 원한다. 물론 동시에 신뢰할 수 있는 제품을 바라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중고(中古)"라는 특성 상 가격과 신뢰성은 양립하기 쉽지 않다.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서다. 법적으로는 판매자가 지도록 했지만 고의적으로 회피하는 일도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가격과 제품 신뢰도는 대척점에 있는 트레이드 오프 관계다. 가격이 저렴하면 제품에 하자가 있을 수 있고 반대라면 구매에 부담으로 작용한다. 간혹 운이 좋아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된 제품을 살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운(運)"이 뒤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는 게 맞다. 중고차를 어디서 사든지 그건 소비자 마음이다. 제조사 인증 제품을 비싸게 구매하든지 아니면 저렴하되 기존 매매사업자를 통해 사든지 결정하도록 놔두면 된다. 그런데 제품을 파는 곳이 제한되는 게 문제다. 백화점, 할인점, 재래시장이 공존하는 것처럼 중고차도 다양한 곳에서 판매돼야 소비자 선택권도 늘어나고, 또한 그럴수록 유통사업자는 책임 소재 경쟁에 나서기 마련이다. 자동차는 새 차와 중고차를 가리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안전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기계 공산품인 탓이다. 그러나 소비자는 정작 외면한 채 정부와 정치권은 유통 사업자 사이에 끼어 중재를 시도했고 결정을 2년이나 미뤘다.  

 결국 오랜 시간 논란에 지친 제조사가 진출을 선언했다. 이제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러자 여러 소비자 단체들도 환영 입장을 내놨다. 설령 제조사가 인증한 중고차 가격이 비싸더라도 진입을 반긴다. 오죽하면 한 소비자 단체는 판단을 유보한 중기부를 대상으로 국민감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왜 정부가 소비자를 위해 판단하지 않느냐는 항변이다. 선택을 소비자가 직접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이유에서다. 제조사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강행한 배경이다. 

 권용주(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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