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태평양 지역, 토요타 정면 승부
현대차그룹이 올해 들어 대권역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글로벌 시장을 미주, 유럽러시아, 인도중동, 중국, 한국아태권역 등 5개 대권역으로 나누고 현지 개발, 생산, 판매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런데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한국아태권역이다. 다른 기업처럼 중국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포함시킨 게 아니라 별도 시장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대신 인도네시아를 중심으로 아태지역 영향력을 늘리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중국에서 부진한 판매를 아태지역에서 회복하겠다는 의지로 해석하고 있다.
중국 사업의 부진은 사드 배치 이후 본격화됐지만 좀처럼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아 왔다. 지난해 11월에는 점유율이 1.8%로 중국 진출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사드가 판매 부진의 계기를 만들기는 했지만 중국 현지에선 토종 브랜드의 가파른 성장이 현대기아차 발목을 잡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게다가 중국 기업의 프리미엄 제품 출시도 영향을 미쳤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지리와 볼보가 손잡고 내놓은 ‘링크앤코’와 같은 신생 프리미엄 브랜드의 성장이 지속될수록 현대차가 받는 영향이 커진다는 뜻이다.
중국 토종 브랜드의 성장이 한국차의 발목을 잡을 때 현대차가 겨냥한 곳은 일본 토요타다. 하지만 토요타는 지난해 중국에서 200만대를 판매해 9년 연속 최고 실적을 거뒀다. 혼다와 닛산도 중국에선 힘을 쓰지 못했지만 토요타만 유독 눈부신 실적을 이뤄내 현대차에게 자극이 됐다. 베이징현대차 관계자의 분석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는 "토종 기업의 프리미엄 브랜드 출시와 토요타의 선전이 현대차의 반등을 가로막은 요인이 됐다는 분석에 일부분 동의한다"는 입장을 전해오기도 했다.
그러자 현대차가 눈을 돌린 곳은 아태지역이다.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 설립을 계기로 토요타의 시장 점유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태국, 필리핀, 캄보디아 등 동남아 시장에서 토요타를 따라잡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더불어 토요타의 안방인 일본 시장 재진출도 검토를 마치고 올 하반기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토요타가 장악한 동남아와 일본에서 판매를 늘려 중국 부진까지 만회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지난해 토요타의 중국 내 성장에는 HEV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토요타의 중국 내 판매 194만대 가운데 HEV는 24.5%인 47만5,000대에 달했다. 2021년 기준 중국 내 완성차 판매가 연간 2,600만대이고 이 가운데 보조금을 받는 친환경차(BEV, PHEV)가 300만대 내외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조금도 없는 HEV로 나름 중국 시장에서 활개(?)를 펼쳤다는 뜻이다.
그리고 토요타의 HEV 전략은 동남아에서도 어김없이 확산되는 중이다. 대표적 국가인 태국만 하더라도 여전히 HEV를 찾는 소비자가 많다. 지난 2020년 태국 정부가 국가 전기차 정책위원회를 발족하며 5년 이내에 아세안 전기차 허브로 육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지만 현실에선 내연기관 및 HEV가 여전히 대세다. 물론 토요타의 태국 현지 공장이 많은 역할을 했지만 동남아 시장은 그만큼 토요타가 장벽을 높게 세워둔 곳이나 다름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현대차가 5개 대권역 가운데 한국과 아태권역을 묶은 것도 결국 토요타 맞서기에 초점이 맞추어진 행보로 풀이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선 더 이상 적수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국내 사업의 노하우를 동남아에 적극 이식, 아시아태평양 점유율 향상을 우선 과제로 삼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국내 사업은 어디를 지향했을까? 기본적인 판매 사업은 "확대"가 아닌 "유지"로 정하되 모빌리티 사업을 적극 전개하는 방향으로 개편됐다. 현대차 시각에서 국내 시장은 지금 수준만 유지해도 선방인 규모로 오래 전부터 고착화된 탓이다. 이런 점에서 현대차의 대권역 개편은 아시아지역에서 토요타의 점유율을 빼앗아오는 전략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아시아지역만을 위한 개편은 아니겠지만 여전히 토요타를 빠르게 추격해야 하는 현실은 결코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권용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