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차 판매 정체, 전동화에 따른 정비 위기 돌파
-기존 사업자에 대한 정부 지원은 필요
현대자동차그룹이 중고차 사업에 착수했다. 2년 넘게 끌었던 사업 대기 시간을 감안할 때 정부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정치적 갈등에 휘말릴 것으로 판단해서다. 중고차 사업의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종료는 이미 2019년 완료돼 법적 지위에도 문제가 없다. 정부 및 정치권이 진출에 반대하는 기존 중고차 사업자의 눈치를 오랜 시간 보아온 점이 대선 이후라고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실 현대차의 중고차 진출 의지는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는 목적이 담겨 있다. 그런데 진출의 명분은 소비자와 기존 중고차 업계가 제공했다. 투명하지 못한, 여전히 정보 비대칭성에 따른 소비자 피해가 끊이지 않자 오히려 소비자들이 대기업의 진출을 반겼다는 뜻이다. 여기서 명분을 찾은 현대차는 기존 중고차 업계를 향해 상생안을 내놓고 합의를 시도했지만 신차 판매권 및 전시장의 매입을 제한하자는 의견에 합의 도출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의 우호적인 반응이 이어지자 정부의 판단을 뒤로한 채 일단 진입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여론의 반응은 매우 우호적이다. 결국 기존 사업자의 불신이 대기업 진출을 열어주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명분이 그렇다면 이면에는 "수익"이라는 실리적인 측면이 작용한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연간 180만대 내외에서 이미 정체돼 있다. 등록대수만 2,470만대로 1대당 2.1명 수준이다(국토부 2021년 통계). 따라서 새롭게 수요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신차 구매자는 차를 바꾸는 이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익을 늘리려면 상대적으로 값비싼 중대형 고급차의 집중 판매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반도체 부족이 향후 1~2년간 이어진다는 점에서 대량 생산 축소에 따른 수익 대체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눈을 돌린 곳이 중고차 유통이다. 소비자들이 진출을 반기는 데다 엄밀하게 볼 때 중고차는 신차 판매가 아니라 기존 제품의 유통사업이라는 점에서 여러 부가적인 수익을 만들어낼 수 있어서다. 제품을 검사하고 인증하는 과정에선 이미 전국적으로 갖추어진 정비 네트워크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 1대의 중고차는 여러 차례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실제 현대차는 점차 늘어나는 전기차 시대에 자체 정비 네트워크의 생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 기존 중고차 유통 과정에 전국적인 정비망을 활용하는 방안의 검토를 이미 마쳤다.
하지만 기존 중고차 업계의 반발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5년 또는 10만㎞ 이내" 차종만 유통시키되 시장 확대는 스스로 제한을 두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지난해 상생협약에서 이미 제시한 내용이다. 여기서 일정 물량 제한이란 연간 250만대 시장에서 10%인 25만대를 의미한다. 당초 중고차 업계는 전체가 아니라 개인 거래를 제외한 130만대의 10%인 13만대를 제시했지만 이는 현대차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6년 12만㎞" 조건을 "5년 10만㎞"로 낮추며 스스로 상생하겠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현대차의 중고차 유통 사업 진출은 중고차 가격 인상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검사 항목 수가 200가지가 넘고 판매에 따른 보증 등이 포함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대차라는 거대 매매상사에서 중고차를 사는 것은 비쌀 수밖에 없다. 이때는 소비자 선택의 논리가 작용된다. 백화점, 할인마트, 재래시장을 선택적으로 가듯 중고차 또한 소비자 스스로 상품을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신뢰도와 가격의 상관 관계를 잘 고려해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만들겠다는 의미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은 제도적으로 기존 중고차 사업자의 거래 투명성을 높여주는 일이다. 난립한 중고차 매매사업자의 유통 물량이 투명하게 거래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지도록 지원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기존 사업자의 연합체가 대기업과 직접 경쟁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소비자 가격은 내려갈 수 있다.
흔히 시장에서 메기효과를 많이 언급한다. 정체된 생태계에서 강력한 포식자가 나타나면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활력을 띠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그런데 정작 미꾸라지 수조에 메기를 넣었더니 두려움에 떨어 오히려 폐사율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따라서 기존 중고차 업계에 대한 정부의 통합적 지원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그래야 건전한 경쟁의 수조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