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혜자는 업계, 피해자는 소비자...
지난달 중소기업사업조정심의회가 자동차 대기업과 중고차 업계의 사업조정 권고안을 의결했다. 갈등 당사자 간 자율조정 실패 후 심의위가 내놓은 중재안인 셈이다. 그 결과 국내 완성차기업의 중고차 진출 시점이 1년 뒤로 늦추어졌다. 그러자 소비자들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한 결정인가"라고 말이다.
1년 뒤로 미룬 결정적 배경은 전문기관 2곳이 수행한 대기업, 특히 현대기아차의 중고차 진출에 따른 "중소기업의 피해 실태조사" 결과다. 구체적으로 어느 전문 기관의 조사 결과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기존 중고차 판매사업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현대기아차의 중고차 판매 사업개시 시점은 내년 5월로 연기됐다. 다만, 내년 1월부터 사업 시작이 이뤄지는 5월까지 4개월 동안 5,000대 내에서 시범 사업을 허용했다. 이와 함께 내년에는 현대차 2.9%, 기아 2.1%로 판매 물량을 제한하고 2024년에는 현대차 4.1%, 기아 2.9%로 묶었다. 여기서 상한 기준은 국토부 자동차 이전등록 통계를 삼으라고 했다. 그간 제조사는 개인 및 사업자 간 모든 거래대수 기준을 주장한 반면 기존 중고차 사업자는 매매사업자 거래 대수만 기준 삼아야 한다고 했다. 심의위는 둘의 평균 값이라는 중재안을 제시했다. 또한 제조사는 신차 구매자가 타던 차를 처분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만 중고차 매입을 할 수 있도록 했고, 해당 중고차를 인증중고차로 판매하지 않으면 경매에 넘기라고 했다. 이때 매입은 기존 중고차 매매사업자가 50% 이상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마디로 진출을 허용은 하되 시장 점유율이 급격히 늘지 않도록 여러 제한 장치를 만든 셈이다.
그러면서 중기부는 이번 결론에 대해 완성차업계의 중고차 사업 진출에 따른 기존 중소 사업자의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소비자 기대를 어떻게 충족시킬지에 대한 절충선을 찾는데 많은 고심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기존 중고차 사업자에게는 대기업과 경쟁이 가능한 시간을 벌어주고 매입 물량도 확보해주는가 하면 대기업도 진출을 허용했으니 서로 상생이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대기아차가 이번 결정을 수용하고 잘 준수해 달라는 입장도 나타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주목할 점은 이번 결정에 따른 수혜자와 피해자가 누구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수혜자는 현대기아차와 기존 중고차 사업자다. 현대기아는 비록 시점은 늦추어졌지만 사업 진출이 허용됐고 기존 중고차 사업자 또한 나름의 준비 시간을 벌었다. 쉽게 보면 갈등의 당사자는 "조정"이라는 명분 하에 100%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자신들의 이해를 충족시켰다. 그럼 과연 피해자는 누구일까를 생각해보면 결국 소비자다. 가급적 문제없는 제품을 구입하려는 소비자 선택권이 해당 기간 만큼 제한되는 탓이다.
실제 그 사이 중고차 피해는 계속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이번 결정을 내린 중기부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누구를 위해서 "1년 유예"를 선택했냐는 것이다. 일부 소비자는 해당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실제 중고차를 구매할 때 문제를 겪어봐야 한다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조정 결정에 참여한 사람들 또한 소비자인데 이들이 완성차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원하는 소비자를 외면했다는 것에 상당한 실망감을 표출하기도 한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이번 결정이 소비자들의 피해는 감안하지 않은 채 중고차업계의 이익만 고려된 것이라는 입장을 나타냈고 자동차10년타기시민운동연합 또한 중기부가 중고차 업계의 어려움을 감안한 것이지 소비자의 피해방지는 외면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이번 결정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제기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크고 투표 수가 확실히 계산되는 중고차 업계의 입장이 반영된 탓이다. 반면 "소비자"는 특정 지을 수 없는 대상인 데다 투표 숫자로 계산되지 않아 외면해도 선거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셈법이 작용했을 것이란 시각이다. 실제 한국소비자연맹이 지난 2020년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 1,000명의 인식도를 조사했는데 66%가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긍정적으로 반겼다. 하지만 여기서 "소비자"는 불특정 대상이어서 정치권의 표심 공략이 애매한 집단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중기부에 묻고 있다. "그 사이 중고차 거래 피해가 발생하면 그 책임은 중기부가 질 것인가"라고.. 물론 굳이 묻지 않아도 답변은 정해져 있다. 정부는 중재만 할 뿐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말이다. 이 말은 피해는 소비자 스스로 알아서 감수하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