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부품, 금융 등 전 사업에 영향 미쳐
155만대는 이미 팔았다. 그리고 230만대는 주문을 받아놨다. 그렇다면 385만대는 이미 달성한 실적이다. 올해 747만대 목표를 이루려면 추가로 362만대를 출고하면 된다. 하지만 230만대에 362만대를 더한 592만대의 생산을 끝내야 하는 시점은 올해 말이다. 3개월 동안 155만대를 출고했으니 만약 이대로 간다면 올해 가능한 판매는 620만대에 그친다. 목표에는 무려 127만대나 부족하다. 127만대는 현대차 울산 공장의 연간 생산량에 맞먹는 규모다. 따라서 올해 127만대를 만들지 못하면 한국 자동차산업은 심각한 재앙에 돌입하게 된다. 특히 부품 업계는 와해를 걱정할 수도 있다. 그리고 부품이 무너지면 완성차의 공급난은 또다시 가중되고 생산은 더욱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현대기아차로 대표되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현재 이야기다.
물론 생산 여력은 충분하다. 공급만 받쳐준다면 완성차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부품이 부족하다. 반도체도 그렇고 다른 부품도 결손이 생긴다. 전쟁 여파, 그리고 코로나19 봉쇄에 따라 부품 공장이 수시로 가동을 중단하면서 완성차를 만들고 싶어도 어렵다. 게다가 결손의 대부분은 해외 조달 부품에 몰려 있어 대체 공급선을 찾기도 쉽지 않다.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다. 심지어 부품 부족은 공급 여력이 충분한 다른 부품 기업마저 위기로 몰아 넣는다. 여기서 버티지 못하면 결국 인력 감축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이미 진행하는 곳도 부지기수다.
현재 밀려 있는 230만대의 국내외 계약자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하염없이 기다림만 반복될 뿐 뾰족한 대안이 없다. 그래서 전시장을 찾아가면 계약을 걸어두고 타던 차를 오래 타라고 조언할 뿐이다. 더불어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직원도 우울하다. 자동차를 많이 만들수록 임금도 많아지는데 그렇지 못해 손해다. 많이 만들어 성과를 내야 나누는 법이다.
그래서 중고차도 어렵다. 신차 출고가 지연되니 소비자들이 타던 차를 계속 탄다. 그럼 중고차를 내놓는 사람이 줄어 거래 가격은 오른다. 하지만 너무 오르면 사려던 사람도 망설이며 선뜻 구입하지 않는다. 팔 차도 없고 살 사람도 줄어 중고차 사업자는 매매가 없다. 중고차 수출도 물량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지사다.
금융이라고 예외는 없다. 새 차 살 때 돈을 빌려주는 할부금융, 리스를 포함해 이자를 수익으로 삼는 장기 렌터카 등도 쉽지 않다. 이른바 소비자와 금융, 렌터카도 물량 확보가 곧 수익 연결인 만큼 물량 확보 전쟁이다. 그러나 제조사가 쉽게 물량을 내어주지 않는다. 리스나 렌터카는 그간 대규모 자금력을 앞세워 물량의 입도선매 전략을 추구해 왔다. 생산량이 많을 때는 제조사도 우선 공급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할부금융을 통한 개인 소비자가 우선 공급 대상이며 리스와 렌터카는 줄였다. 그 결과 과거처럼 렌터카를 이용하면 즉시 신차를 가져갈 수 있다는 광고 문구는 사라진 지 오래다.
반면 호황을 외치는 곳도 있다. 정유 기업이다. 자동차 보유 기간이 늘어나고 그간 바이러스로 억제됐던 사람 간 만남이 활발해지면서 이동 거리가 훌쩍 늘어난 덕분이다. 그래서 정비도 나쁘지 않다. 이동 거리가 늘어나면 소모품 사용도 함께 증가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친환경차 증가에 따른 정비업의 위기가 일시 진정되는 양상도 보인다.
그런데 공급 부족이 심화되면 시장이 양극화되기 마련이다. 위기에 몰린 기업들의 모든 초점이 이익 방어에 집중돼 중대형 고급차 우선 현상이 더욱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 경우 생계형 차종은 생산이 오히려 위축돼 출고 시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 모든 제품의 생산이 부족할 때 가장 이익이 높은 쪽을 우선하는 것은 기업의 본능이다.
완성차의 부품 공급난은 연쇄적으로 국가 산업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외형상 대기업의 생산량 감소지만 여파는 중소 부품 기업으로 갈수록 훨씬 높아지며 생계형 사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오는 7월부터 공장도가격의 3.5%에서 5.0%로 환원되는 개별소비세 인하를 다시 또 연장해 달라는 목소리가 벌써 쏟아진다. 그러나 정부도 개별소비세를 더이상 포기하지 못한다. 출고 대수 감소로 완성차에 다양하게 붙어 있는 국세와 지방세도 함께 줄어들고 있어서다. 이 부분을 운행 확대에 따른 유류세로 메우고 있지만 친환경차 증가로 유류세 감소도 대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인하 연장에 대한 기대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완성차 출고 적체는 단순히 소비자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에 멈추지 않는다. 일자리는 물론 여러 업종에 다양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그만큼 자동차가 국가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을 다시 한번 보여주는 방증이다. 게다가 대책은 대부분 장기적 처방에 몰려 있을 뿐 지금 상황의 해법은 별로 없다. 완성차기업의 글로벌 부품 확보 능력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모두가 완성차기업만을 바라보는 배경이다.
권용주(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