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수단 발전 속 교통 약자 고려되지 않아
-블랙캡에 쓰인 유니버셜 디자인 늘어나야
영국 런던의 명물로 꼽히는 블랙캡(LEVC TX5)이 최근 국내에서 상업 운행에 나섰다. 블랙캡은 모두가 탑승 가능한 이른바, 유니버셜 디자인(Universal Design)이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모두 접근할 수 있는 게 핵심이다. 게다가 과거엔 영국에서만 판매돼 디젤 엔진을 탑재했지만 지금은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파워트레인이 구성돼 환경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동력계를 떠나 블랙캡의 가장 큰 가치는 별도의 개조 없이 휠체어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탑승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거리에 등장한 노란 번호판의 블랙캡을 보면 최근 불거진 교통 약자들의 하소연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해 말부터 이동권 관련 공약을 지키라며 수 개월 동안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진행해 왔다. 물론 이들은 오래 전부터 기본 권리인 이동권 향상에 대한 목소리를 내왔다.
사실 과거 수십 년 간 이동 수단은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그러나 절대적으로 숫자가 많은 비장애인을 위한 것이었을 뿐 장애인을 위한 교통 시스템은 진화가 더뎠다. 굳이 꼽으라면 전철역에 설치한 엘리베이터와 닐링 기능을 적용한 저상버스 정도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숫자가 비장애인 대비 적다 보니 이들 시스템도 결국 비장애인들이 차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승합차를 개조해 휠체어를 따로 싣는 전용 택시도 수요와 공급이 엇박자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달 기아는 첫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라며 니로 플러스를 내놨다. 하지만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지붕을 높이고 뒷좌석 승하차 편의성을 개선했지만 휠체어 탑승은 불가능하다. 가격 면에서 소비자 접근성을 높였지만 사용자 환경 면에선 그리 획기적이지 않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 블랙캡의 한국 등장은 PBV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굳이 휠체어 이용자가 타지 않더라도 기사를 제외한 6명이 탑승할 수 있어 새로운 이동 가치도 제공할 수 있다. 전동화 플랫폼 기반의 본격 PBV가 나오기 전까진 보편적 이동 가치를 제시할 유일한 존재이니 말이다.
물론 가격과 성능, 편의성 측면에서 니로 플러스는 강점이 많다. 반면 영국 블랙캡은 모두의 탑승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있되 가격은 비싸다. 2020년 기준 교통약자만 1,540만명이고 오는 2036년에는 인구의 30%가 교통약자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가치는 무엇일까? 조금은 생각해 볼 문제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