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 전동화 속도 높이되 부품 기업 기다리지 않아
-국내 문제보다 글로벌 이슈에 적극 대응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생산된 완성차는 346만대에 달한다. 이 가운데 승용차가 316만대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제조사별 승용차 생산은 현대차가 142만7,000대, 기아 130만2,000대, 한국지엠 22만3,000대, 르노코리아 12만8,000대, 쌍용차 8만2,000대 가량이다. 현대차와 기아를 합치면 272만9,000대에 이른다.
굳이 생산에서 승용을 따로 떼어내 집계한 배경은 최근 현대차그룹이 발표한 국내 전기차 생산 목표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은 오는 2030년 한국에서 전기차 144만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상용도 일부 있겠지만 생산 차종만 보면 대부분 승용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이 경우 144만대는 지난해 생산한 승용차 272만9000대의 52.9%에 달하는 비중이다. 다시 말해 현재 생산 중인 내연기관의 절반을 전기차로 대체하겠다는 의미다. 2030년까지 불과 7년 가량 남았음에 비춰보면 국내 자동차산업의 전면 전환이 예고됐다는 것이다.
물론 연간 144만대 목표는 매년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숫자다. 예를 들어 올해는 35만대를 만들고 내년에는 50만대, 2024년에는 80만대 등으로 확대해 궁극적으로 생산 차종의 절반 이상을 전동화 제품으로 바꾼다. 이 말은 곧 국내 내연기관 산업이 8년 사이에 절반 이하로 축소된다는 의미여서 국내 부품 업계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전동화를 대비한 곳은 얼굴에 미소를 띠는 반면 내연기관에서 전기차 부품 전환이 늦거나 아직 시작조차 못한 기업은 짧은 시간 내에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아서다.
이번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전략이 과거와 다른 점은 더이상 국내 부품업계를 견인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동반성장"도 중요하지만 부품 업계의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완성차기업의 미래 생존을 위한 발걸음을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 짙다. 그리고 이런 예고는 오래전부터 해왔다. 지난 2017년 미국 CES에서 현대차그룹 최고 경영진은 부품 업계도 스스로 생존을 위해 전동화 준비를 해야 하며 현대차가 기다려 줄 것으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입장을 확고히 내비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현대차그룹이 전동화 속도를 낼 때마다 국내 부품 업계는 정부를 찾아가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하곤 했다. 더불어 많게는 1,300여개의 부품 기업이 사라질 수 있다며 대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기후 이슈가 강력하게 불거지면서 완성차기업 또한 기다릴 수 없는 처지에 도달했다.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이후 탄소 규제가 훨씬 강력해졌고 과거에 읍소(?)하면 기준 적용을 유예해주던 관행도 사라져버렸다.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부품 업계의 정치적 경고(?) 또한 글로벌 기후변화 이슈 앞에선 소용이 없다. 기후변화는 전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지만 일부 부품 기업의 일자리 감소는 해당 국가의 작은 정치적(?) 항변에 불과한 탓이다.
물론 전동화가 탄소 배출의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이동 수단의 동력을 탄소 배출 없이 또는 탄소를 줄이면서 만들어내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탄소를 줄여야 하는 과제 앞에선 배터리 또는 수소 기반의 전동화에 매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증가는 모두가 부담해야 하는 몫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이동은 비용 면에서 탄소의 영향력이 막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는 "비용"이 아니라 "탄소 감축"에 우선 초점이 맞추어져 비용 억제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 모든 자동차기업이 배터리를 사용하겠다니 소재가 부족해 가격이 오르고 배터리에 필요한 전기를 만드는 과정도 탄소를 줄여야 하니 전력 생산 가격도 오른다. 그래서 친환경에는 비용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모두가 직시해야 할 때다. 그간 탄소 배출을 통해 부자가 된 나라가 이제와 값비싼 친환경을 외치니 일부 국가는 반발도 하지만 탄소가 기후를 변화시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2030년 반토막 날 내연기관 산업에 미련을 갖는 것보다 전환 비용을 마련해 현명하게 대처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한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