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붕 두 가족, 보조금 티격태격
"중국산 전기버스의 국내 시장 잠식을 이대로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도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산 배터리가 탑재된 전기버스에만 보조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중국이 그랬고, 미국은 이미 시행 중인데 왜 우리만 못합니까? 정부가 전기차 배터리 산업을 육성한다며 정작 중요한 부분은 놓치고 있는 겁니다." 최근 국내 전기버스 기업의 고위 임원이 내뱉은 푸념이다.
심지어 운영에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공공 버스도 중국산 전기버스로 대체되는 중이다. 물론 공공버스 경영자도 할 말은 있다. 버스 운영에 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자치단체마다 운영비 절감을 요구하는데 그 가운데는 버스 구매 비용도 포함돼 있다. 그러니 국산 대비 최대 1억원 가량 저렴한 중국산 전기버스로 구매 비용을 아낄수록 시민의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는 논리다.
실제 수익이 최우선인 기업으로선 굳이 값비싼 국산 배터리를 쓸 이유가 없다. 동일 거리, 동일 효율, 동일 품질이 충족될 때는 구매 가격을 낮추는 게 상식이다. 기아가 최근 니로 플러스 전기차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CATL 리튬이온 배터리를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산"이라는 꼬리표가 있지만 소비자가 운행할 때 국산 배터리와 비교해 성능 및 품질이 밀리지 않고 생산지에 따른 보조금 차별도 없으니 굳이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런데 전기버스 시장을 중국산에 빠르게 빼앗기는 현대차를 포함해 국내 버스 기업들은 보조금 지급 규정에 배터리 생산지와 구성 소재 가운데 하나는 포함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과거 중국이 한국산 배터리에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을 때 삼원계 소재를 이유 삼았던 만큼 한국 또한 중국이 주력하는 LFP 소재 배터리는 보조금 지급을 중단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다시 말해 비용이 아니라 공정의 시각으로 보조금을 보자는 뜻이다. 물론 승용에 집중하는 기아로선 보조금에 생산지를 넣는 게 부담인 반면 상용 부문에서 위기감을 느끼는 현대차는 배터리 생산지 또는 구성 소재도 보조금 지급 기준에 넣자는 주장에 은근 동의하는 분위기다. 배터리 보조금을 두고 한 지붕 두 가족인 양 사의 입장에 미묘한 차이가 발생한 셈이다.
그래서 또다시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친환경차 보조금 지급 규정은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제10조에 규정돼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구매 및 소유자에게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문구가 근거다. 그리고 환경친화적 자동차는 전기차, 태양광자동차, 하이브리드자동차, 수소전기자동차 등으로 정하고 있다.
그럼 지원을 위한 돈은 어디서 마련할까? 같은 법 13조는 에너지 및 자원사업으로 조성된 특별 회계, 그리고 중소벤처기업창업 및 진흥을 위한 기금, 마지막으로 환경정책기본법에 따른 환경개선특별회계를 통해 보조금을 조달하도록 명문화 돼 있다. 이 규정에 따라 환경부는 대당 평균 800만원의 보조금을 환경친화적 자동차에 주고 자치단체 또한 각각의 상황에 따라 일정 금액을 제공하는 중이다. 그래서 국내 전기차 보조금은 어디까지나 "자동차"라는 운송수단에 지급되는 중이다.
그런데 보조금은 "운송수단"에 지급하되 "운송"의 기능이 끝나면 배터리를 국가에 반납토록 했다. <전기자동차 배터리 반납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국가 또는 자치단체 보조금이 투입된 배터리 전기차는 등록이 말소될 때 배터리를 광역자치단체장에게 반납해야 한다. 한 마디로 전기차에 부착된 배터리에 정부 보조금이 포함됐으니 소유권은 정부에 있다는 뜻이다. 보조금 지급 대상은 완성차지만 실질 지급은 배터리라는 의미다.
이렇게 된 배경은 전기차의 차체와 배터리를 분리하지 않은 시각에서 발생한다. BEV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부품은 배터리인데 가격이 비싸다는 점에서 구매 보조금은 "완성차"에 지급하되 회수는 배터리로 한다. 구매 때는 배터리와 차체를 일체형으로 여기고 회수 때는 배터리와 차체를 분리형으로 접근하는 셈이다.
이런 배경에서 현대차와 기아의 배터리 보조금 시각을 대입하면 극명하게 입장이 엇갈린다. 현대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을 배터리로 봐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기아는 전기버스 없이 승용 시장만을 고려할 때 이동 수단에 지급하는 게 맞다는 논리다. 한 지붕 두 가족이지만 전기차 보조금에선 서서히 갈등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