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세 30% 인하 기준, 처음으로 명시 금액 적용
-이동에 필요한 동력세, 친환경 맞물려 조정돼야
A에서 B까지 자동차로 이동을 한다. 이때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세금을 낸다. 일종의 이동세 개념이다. 그리고 현재는 세금이 동력 발생에 필요한 연료에 집중돼 있다. 흔히 말하는 유류세다. 하지만 연료를 태워 이동에 필요한 동력을 만드는 것은 내연기관이다. 그래서 "엔진 작동=연료 소모"와 같다. 유류가 아니라 엔진에 세금을 부과하자는 목소리의 배경이다.
최근 고유가로 한때 팽팽했던 "연료 vs 엔진"의 세금 부과 논란이 다시 촉발되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수송에 사용되는 휘발유 1ℓ의 전국 평균 가격은 2,144원, 경유는 2,167원, LPG는 1,133원이다. 가파르게 오르는 국제 유가가 반영된 결과다. 그러자 정부가 유류세를 내렸다. 1일부터 최대 30%를 인하했는데 세율로 연동된 교육세, 주행세, 부가세 등의 인하까지 고려하면 최대 37% 떨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데 30% 인하를 기준 삼는 금액이 이전과 다르다. 앞서 유류세 30%를 먼저 내렸을 때는 휘발유 1ℓ의 세금 기준을 529원으로 삼았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 명시된 휘발유 세금은 475원이지만 인하에 앞서 10% 인상을 했던 터라 529원을 기준으로 30%를 내렸다. 그 결과 ℓ당 370원(경유는 263원)을 적용했다. 하지만 오늘부터 휘발유의 교통에너지환경세는 ℓ당 332원, 경유는 238원으로 더욱 낮아졌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미 10% 높였던 529원이 아니라 원래 법에 명시된 475원을 기준 삼았다. 쉽게 보면 이번 인하는 세율이 아니라 기준 세액을 바꾼 셈이다. 529원에서 30%를 내렸던 탓에 추가 세율 인하는 불가능한 만큼 세액 기준을 475원으로 변경해 유류세 추가 인하를 단행한 형국이다.
인상 및 인하 기준 세액을 법에 명시된 475원으로 삼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정유 업계는 급격하게 치솟는 기름 값을 억제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법률 해석으로 보고 있다.과거 사례를 적용하면 이미 오른 529원에서 40% 인하여서 법을 위반한 것 같지만 기준 금액을 475원으로 삼았으니 위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에는 왜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냐며 유류세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는 지적도 쏟아졌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유류세 인상 및 인하를 결정할 때 이번처럼 시행령이 아니라 법률에 명시된 금액이 적용된다는 새로운 원칙이 만들어졌다.
이 과정에서 유류세의 전면적 재검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고 있다. 이동세를 기름이 아니라 자동차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기본적으로 기름은 많이 소비할수록 탄소 배출도 많아 일종의 오염자부담원칙 과세가 적용된다. 하지만 탄소가 함유된 기름 소비로 이동에 필요한 동력을 만드는 것은 내연기관이다. 게다가 배기량이 클수록 동일 거리를 이동할 때 많은 기름을 소비하니 재산 가치의 과세도 들어갈 수 있다는 명분이 떠올랐다.
반면 기름에 여전히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시각에는 동일한 배기량의 자동차라도 기름 소비량은 운전자에 따라 다르다는 점이 반영된다. 사람이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따라 효율은 최대 30%까지 차이날 수 있다. 그래서 동력이 아니라 기름에 세금을 부과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는다.
"유류세 vs 내연기관세"의 팽팽한 대립은 오래 전부터 펼쳐져 왔다. 하지만 자동차에 내연세를 붙였을 때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 그리고 세금 징수 방법을 고려할 때 기름에 부과하는 게 낫다는 입장에 힘이 실렸다. 하지만 고유가 못지 않게 새롭게 떠오른 변수가 친환경 이동 수단의 전환 촉진이다.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전기차 구매를 장려하는 상황에서 내연기관 세금 부담을 높여야 한다는 명분이 서서히 힘을 얻는 중이다. 게다가 자동차기업 또한 전동화에 매진하는 점을 고려하면 "다시 내연기관"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따라서 "내연기관"의 구매 부담을 높이면 오히려 전기차 확대가 앞당겨진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실제 이번 고유가 위기를 통해 이동 부문에 부과된 각종 세금의 전면 손질을 해보자는 전문가가 은근히 많다. 탄소 배출 저감,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 확보 방안, 환경과 도로 이용에 부과되는 세금의 정확한 분리 등이 전제돼야 미래 모빌리티 산업이 육성될 수 있어서다. 그래서 유류세와 내연세, 그리고 전기차의 전력세와 도로 이용세까지 총체적인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세금이 모빌리티 분야에선 너무나도 중요한 정책 항목이기 때문이다.
권용주(국민대 운송디자인 겸임교수,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