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V, 특장 개념 없이 제조사가 직접 완성차로 출시
-특장 업계에 위협적인 존재로 자리매김
기아가 지난 4일 봉고Ⅲ EV 냉동탑차를 출시했다. 봉고Ⅲ EV에 고전압 배터리를 활용할 수 있는 냉동 적재함을 장착해 운행 효율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기아는 보조배터리를 추가해 외부 특장차보다 350㎏ 많은 1,000㎏의 적재중량을 제공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아가 새 전기트럭을 소개하며 "외부 특장차"를 언급한 배경은 봉고 EV 냉동탑차의 직접 경쟁이 외부 특장 업체로 모아지는 탓이다. 이런 특성은 제품의 성능 및 가격 면에서도 두드러진다. 기아가 밝힌 봉고Ⅲ EV 냉동탑차는 135㎾ 모터와 58.8㎾h 배터리를 탑재해 완충 시 177㎞를 주행할 수 있다. 냉동기 가동 시에도 150㎞ 이상을 달릴 수 있으며 5,984만~5,995만원의 가격표를 붙였다. 반면 중소 전기차 기업인 파워플라자가 특장으로 내놓은 봉고3 EV 피스 냉동탑차는 60㎾ 모터와 40.1㎾h 배터리를 장착하고 130㎞의 주행 거리에 머물지만 가격은 6,400만원대부터 시작한다. 이밖에 특장기업 일진 정공은 135㎾ 모터와 58.8㎾h 배터리를 채택한 봉고Ⅲ EV에 냉동 적재함을 얹고 6,700만원대부터 전기 냉동탑차를 판매하고 있다. 기아가 내놓은 PBV와 비교할 때 가격 및 성능 면에서 크게 뒤지는 셈이다. 실제 신차 출시 소식을 들은 일부 소비자들의 수요 움직임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게다가 특장 기업은 완성차로부터 제품을 구입, 별도 개조 및 장비를 부착하는 탓에 신차 출고가 지연되기 일쑤다.
기아의 특장 업계 잠식은 목적 기반 모빌리티(Purpose Built Vehicle) 시장 선점이 배경으로 꼽힌다. PBV는 승합·배송·물류 서비스를 위한 전용 자동차로, 운수 및 배송 업체 주문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작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2030년 세계 PBV 시장을 연간 2,000만대로 내다보고 있다. 이에 따라 기아뿐 아니라 GM, 토요타, 폭스바겐 등의 주요 완성차 기업도 이 분야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PBV는 완성차 회사들에게 새로운 시장 진입 기회를 의미한다. 단순히 자동차만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활용해 직접 배송 시장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것. 향후 전동화, 자율주행과 접목할 경우 용도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기능,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동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비즈니스 창출 기회가 많다는 판단이다. 따라서 과거 PBV 전신 격인 봉고로 신화를 썼던 기아로선 제 2의 봉고 신화를 PBV로 이어가겠다는 전략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목소리다. 기아 역시 이 점을 간파하고 봉고Ⅲ EV 냉동탑차를 개발하는 동안 지역 냉장·냉동 물류 서비스 업체와 운전자들의 협조를 받아 사용성을 검증했다.
반면 완성차기업의 특장 진입에 따라 이들의 앞날은 우울하다. 특장 중에서도 주력 시장의 지배력이 완성차로 옮겨갈 수밖에 없어서다. 대표적인 사례가 앞서 지난 5월 처음 선보인 1세대 니로 EV 기반의 택시 전용 니로 플러스 PBV다. 뒷좌석 공간을 키우고 디지털 운행 기록계, 앱미터 등을 통합한 올인원 디스플레이를 갖춰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기존 미터기 제조사는 배제됐다. 쉽게 보면 택시 전용 애프터마켓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이처럼 자동차 회사들이 미래차 전략을 개시하면서 내연기관 시대에 활약했던 분야는 점차 사양길로 접어들 전망이다. 특장 업계의 먹거리였던 자동차 개조 시장도 PBV라는 거대한 파도를 앞에 두고 있다. 냉동탑차는 이제 시작인 셈이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