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국내 모든 차가 전기차로 바뀐다면

입력 2022년07월31일 00시00분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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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력 공급 차질 있을까

 전력연구원이 지난해 6월 전기차 사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주행거리를 조사했더니 전기차 월평균 주행거리가 1,984㎞로 일반 내연기관 승용차(1,053㎞)보다 무려 900㎞나 길다는 결과가 확인됐다. 에너지 비용이 저렴하니 오히려 이동 거리도 증가한 것이다. 효율을 높이면 에너지 사용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오히려 소비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제본스는 이를 ‘에너지의 역설’로 규정했다. 효율이 오르면 에너지 사용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법칙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2021 연간 자동차 주행거리 통계에 따르면 비사업용 일반 승용차의 월 평균 주행거리는 휘발유차가 864㎞인 반면 그보다 효율이 높은 경유는 1,164㎞다. 그런데 하이브리드 등의 친환경으로 요약되는 기타연료 부문은 1,200㎞에 달한다. 효율이 높을수록 이용 거리도 많다는 점이 실질적인 통계로 입증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역설에 반박하는 주장도 있다. 고효율이어서 이동 거리가 늘어나는 게 아니라 장거리 이동이 필요한 사람일수록 경제적 목적을 이유로 고효율 자동차를 선택하는 경향이 짙다는 반박이다. 그러나 이유와 목적이 무엇이든 에너지 비용이 적게 들어가는 자동차일수록 이동 거리와 이용 시간이 많다는 것은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에너지 비용이 적을수록 이동의 편리함을 추구하는 욕망이 강해지는 탓이다. 

 그래서 전기차는 전력연구원이 조사한 것처럼 주행거리가 길다. 그렇다면 에너지 사용량은 얼마나 될까? 현대차 아이오닉5 스탠다드 2WD 전기차의 배터리 용량은 58㎾h이고 전력을 가득 담으면 약 295㎞를 주행할 수 있다. 월 평균 1,984㎞를 주행하려면 58㎾h 배터리를 6.7회 충전해야 하고 이때 총 사용 전력량은 388㎾h다. 이는 서울의 가구당 월평균 전력 사용량 259㎾h(2021년 9월 기준, 한국전력 데이터포탈)보다 129㎾h가 많다. 그러니 전기차 한 대의 추가는 한 가구가 늘어나는 것과 같다. 물론 개별 차종마다 이동 거리 및 효율은 다르겠지만 올해 6월말 기준 국내에 누적 등록된 전기차가 29만8,000대에 달하는 만큼 이들을 그대로 대입하면 전기차의 월 전력사용량은 116GWh에 달한다. 

 그런데 만약 아이오닉5 스탠다드 2WD 전기차가 국내 자동차 등록대수에 맞먹는 2,500만대가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모든 내연기관이 전기차로 바뀔 때 필요한 전력량이 궁금해졌다. 우선 한국의 연간 발전량은 2021년 기준 57만6,809GWh(연도별 한국전력통계)다. 2017년 이후 꾸준히 55만GWh 이상의 발전을 해왔다. 전기를 만드는 방식별로 구분하면 원자력 15만8,015GWh, 석탄 19만7,966GWh, 가스 16만8,378GWh, 신재생 4만3,096GWh, 유류 2,355GWh, 양수 3,683GWh, 기타 3,316GWh다. 여전히 석탄, 원자력, 가스 발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재 누적된 29만8,000대의 배터리가 아이오닉5와 동일 용량이라고 가정할 때 1대의 월 평균 주행거리를 1,984㎞로 기준하면 매월 116GWh가 필요하고 1년이면 1,392GWh를 사용한다. 이를 2,500만대로 확대하면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량은 연간 11만6,778GWh에 달하는데 이는 원자력 발전의 73.90%, 석탄의 58.9%, 가스의 69.3%에 해당되는 발전량이다. 신재생 발전으로만 충전을 하려면 270.97%를 보강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되는 것 자체가 어렵지만 늘어나는 전기차의 에너지 사용 증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전기 에너지 사용량은 현재도 조금씩 증가하는 중이다. 이런 이유로 에너지저장장치(ESS)의 적극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전력 사용이 적을 때 배터리에 담았다가 전력이 많이 필요할 때 저장해 둔 전기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공급을 효율적으로 조절하면 발전량을 늘리지 않고도 향후 증가하는 전기차의 에너지 사용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정부가 전기차 공급량을 보조금으로 조절하는 덕분에 예상 누적 등록대수와 사용 전력을 가늠할 수 있어 문제가 없다는 게 중론이다. 나아가 보조금의 지급 기간도 정부 판단에 달려 있어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우려는 장기적 시각에서 비롯된다. 보조금 자체가 무한 지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제조사 스스로 전기차 가격 낮추기에 돌입했고 일부 기업은 보조금 없이도 판매한다는 계획을 내놓는다. 이 경우 예상보다 가파른 전기차 보급은 전력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다시 말해 보조금이 더 이상 판매를 통제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고 기후변화에 따라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될수록 자동차회사의 전기차 출시와 판매 의지는 강해질 수밖에 없어서다. 따라서 전동화를 위해 독립적으로, 언제든 전기 생산이 가능한 수소 사회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친환경 에너지로 바뀌면 사용량도 늘어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에너지는 공급에 문제가 더더욱 없어야 한다. 다시 말해 탄소 중립은 무작정 가야 할 방향이 아니라 국가의 모든 산업 환경을 감안해 가야 하는 길이고 서두른다고 속도가 나는 포장도로도 아닌 만큼 신중한 전략이 필요하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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