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서서히 힘을 잃어가는 모터쇼

입력 2022년08월26일 00시00분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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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네바모터쇼 2023년도 결국 취소

 마차에서 증기 또는 내연기관으로 동력 전환이 시작되던 1896년 영국에서 최초로 말 없는 마차만을 모아 놓은 모터쇼가 열렸다. 그러자 내연기관 전환 경쟁에 뒤질세라 이듬해 독일 베를린 브리스톨 호텔에 8대의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시되며 모터쇼로 이름을 걸었다. 그런데 옆 나라 프랑스도 자동차산업의 개척자로 유명한 드디옹 부통이 파리에서 모터쇼를 주최했고, 대서양 건너 미국도 1901년 시카고에 내연기관차를 전시해 4,000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시카고를 눈여 본 미국 내 도시는 애틀란타다. 1907년 7일 동안 모터쇼를 열며 15만명의 관람객을 모으는데 성공했다. 당시 애틀란타 지역 내 자동차가 1,300여대에 불과했음을 고려할 때 그야말로 폭발적인 관심이 일어났던 셈이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자동차의 본고장 디트로이트도 모터쇼가 17개 업체 33대를 출품시키며 마차를 대신하는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의 본격 전개를 알렸다. 

 그런데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 스위스도 1905년 제네바에서 모터쇼를 주최했다. 구매자 없는 자동차는 무용지물이라는 점에 착안해 소비자 중심의 박람회를 표방하며 판매자를 끌어들였다. 말(馬) 없이 움직이는 ‘자동차’라는 새로운 문명기기가 굳이 자동차를 만들지 않던 나라의 사람들에겐 구경만으로도 눈이 즐거웠기 때문이다.  

 이후 모터쇼는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며 관람객이 가장 많은 박람회로 우뚝 섰다. 워낙 많이 모여드는 탓에 관련 부품, 소비자 체험 등이 마련되며 각 나라의 지역적 특색을 이어 나갔다. 일반적으로 열흘 정도 열리는 박람회에 100만명 이상이 세계 곳곳에서 몰려드니 모터쇼가 열리는 장소는 호텔과 식당에 사람이 넘쳐났다. 

 그런데 짧게는 100년, 길게는 140년 이상 유지됐던 모터쇼의 위상이 점차 흔들리고 있다. 아니 이미 흔들린 지 오래라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화석연료를 태워 동력을 얻는 내연기관을 대신해 전기로 모터를 돌려 바퀴를 구동시키려는 노력이 점차 확산되고 있어서다. 구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배터리에 담고 고도화된 지능을 부여하자 자동차라는 이동 수단의 성격이 변할 수밖에 없는 탓이다. A에서 B까지 이동의 주체를 이동시키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지만 이동할 때 사용하는 동력이 전환되고 이동 과정에 필요한 ‘조종’ 역할에서 인간 개입이 조금씩 줄어드는 변화가 자동차를 기계가 아닌 지능형 전자기기로 진화시키고 있어서다. 그 결과 자동차회사 또한 미래 변화를 예측해 전반적인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었고 이제는 자동차가 아닌 전자기기 박람회를 찾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가 소비자가전박람회(CES)의 부상이다. 가전 기업들의 잔치로 불렸던 전자 박람회에 10여 전부터 자동차회사가 전기차를 내놓더니 이제는 아예 전시공간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비대해졌다. 관련해 배터리, 모터, 전기차 부품 등을 내놓는 기업도 많아졌고 운송 부문의 플랫폼을 앞세우는 곳도 부지기수다. 비슷한 시기에 열리며 관람객 숫자로는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던 CES가 100년 넘게 유지되던 모터쇼 전시 기간을 옮기도록 했으니 모터쇼로선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다. 

 그러자 위축되던 모터쇼도 살아남기 위해 박람회를 쪼개거나 여러 분야를 섞기 시작했다. 새로운 동력원을 모아 별도로 전시회를 여는가 하면 "모빌리티(Mobility)"라는 명칭 하에 "이동의 모든 것"을 표방하기 시작했다. 그런가하면 아예 개최 장소를 옮기는 행위도 잇따르고 있다. 스위스 제네바모터쇼 주최측이 내년 전시회를 제네바가 아닌 카타르 도하에서 열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유럽을 벗어나 자동차를 만들지 않는 또 다른 국가에서 모터쇼의 컨셉트를 유지하겠다는 의도다. 물론 COVID-19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최초 열렸던 도시를 떠나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 간판을 내건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모터쇼 또한 다국적 산업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다. 

 단적인 사례지만 모터쇼의 변신은 수송 부문의 에너지가 화석연료에서 전기로 바뀌는 동력 전환 시대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생각보다 전환 속도가 빠를 수 있다는 의미인데 자칫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뒤처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근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 등이 앞다퉈 전기 이동 수단 확산에 나서려는 것을 보면 전동화 속도 전쟁은 이미 시작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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