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 산업 간 모빌리티 융합 본격 전개
흔히 사람이 머무는 공간은 고정된 것과 움직이는 것으로 구분된다. 전자의 대표적 사례가 주택이나 사무실 등의 부동산이라면 후자는 자동차로 표현된다. 그리고 고정된 공간은 머무는 사람이 최대한 편안함과 아늑함을 느끼도록 실내를 꾸미기 마련이다.
물론 자동차도 탑승 공간이 편해야 한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 ‘운전’이라는 기능이 더해질 때와 그렇지 않을 때 공간에 대한 관점이 전혀 다르다. 운전 행위자에게 공간은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 기능 작동의 편리함이 중요한 반면 탑승만 한다면 오로지 이동 과정에서 편안함, 그리고 개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동차회사도 판매 제품의 컨셉트에 따라 "나 홀로 운전 및 이동"이 많다면 운전석, 탑승자가 우선이라면 뒷좌석의 넓은 공간을 최대한 주목한다.
그런데 고정된 것과 이동하는 것을 가리지 않는 공통 관심사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집과 자동차의 공간 특성이 ‘운전’이라는 기능 탓에 확실히 구분됐지만 기술 발전으로 조금씩 운전 행위가 배제되면서 안전을 전제로 한 "운전석 공간" 개념 자체가 자꾸 엷어진다는 뜻이다. 아직은 스티어링 휠이 건재하지만 일부 제조사는 자율주행을 추진하며 스티어링 휠의 불필요성을 근거로 ‘운전석’이라는 개념 자체를 없애려 한다. "자동차(自動車)" 의미를 글자 그대로 해석해 "스스로 움직이는 이동 수단"으로 가겠다는 의지다.
이 경우 자동차의 실내 공간은 "운전" 기능을 더 이상 고려하지 않는 만큼 고정된 공간과 다르지 않게 된다. 이동은 기계가 하지만 사람이 머무는 공간은 고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어서다. 그래서 여러 완성차기업이 자율주행의 완성을 전제로 컨텐츠 산업을 언급한다. 폭스바겐그룹이 단계별 모빌리티 사업의 청사진을 제시할 때 궁극의 최종 목표로 컨텐츠 사업을 언급한 배경도 자동차 공간이 결국 집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최근 소니와 혼다가 손을 잡고 "소니-혼다 모빌리티"를 설립된 것도 결국은 공간 개념에서 시작됐다. 소니는 자동차보다 공간을 주목한 반면 혼다는 이동 수단을 제조하는 전문 기업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어 주목받는다. 그래서 양 사의 역할도 분명하게 구분된다. 소니는 철저하게 커넥티드와 자동차 내 인포테인먼트 기능에 주력하는 반면 혼다는 기계로서 자동차의 기본 속성 개발 및 애프터 서비스 등에 충실하게 된다.
과거 경험에 비춰 이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회사가 전기 동력 기반의 모빌리티 합작법인을 설립한 또 다른 배경은 소비자의 개인화와 제품 차별화다. 오랜 시간 "자동차"라는 제품의 차별화 요소 가운데 하나는 엔진 기술로 일컬어졌다. 고성능, 폭발적인 가속력 등을 보여주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 자동차경주 등에 참여하는 것도 차별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하지만 배터리에 담긴 전기로 모터를 돌리는 방식이 확대되면서 동력발생 기술 자체가 어쩔 수 없이 평준화되는 중이다. 이에 따라 제조사들의 시선은 공간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고 자동차 실내는 단순히 머무는 기능에서 벗어나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려 한다. 소니와 혼다의 합작이 이뤄진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앞으로 전통적인 자동차회사와 컨텐츠 기업의 합작은 보다 확장될 수밖에 없다. 특히 게임적 요소의 접목 확대를 예상하는데 결과적으로 게임 전문기업과 자동차회사의 협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게임 속 유명 캐릭터가 자동차 실내 공간의 대화 상대로 등장하고 같이 게임을 즐기며 이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서다. 게다가 주력 소비층이 젊어지고 컨텐츠를 즐기는데 익숙한 세대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할 때 자동차회사에게 "자동차"라는 이동 수단의 기계적 특질은 점차 매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