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사와 렌터카의 묘한 협업과 경쟁
제조물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면 무조건 누군가에게 팔아야 한다. 판매 수익으로 공장 가동을 지속하기 때문이다. 이때 구매자는 개인과 법인을 가리지 않는다. 제조사는 "판매"라는 행위에만 목적을 두기에 최대한 비싸게 많이 팔면 그만이다.
하지만 개인이든 법인이든 구매자는 제품 사용 목적이 제각각이다. 개인이 자신의 편리를 위해 사용할 수도 있고 회사가 업무용으로 쓸 수도 있다. 그런데 회사가 구입하는 경우 자동차를 빌려주는 리스와 렌탈 목적도 있다. 사서 쓰는 게 아니라 빌려 타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다. 수많은 금융사와 렌터카 기업이 리스와 렌탈 등으로 자동차를 운영해 이자 수익을 가져가는 것도 그만큼 빌려 타는 시장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덕분이다.
여기서 제조사의 고민도 시작된다. 만든 제품을 판매하기도 하지만 제조사가 직접 빌려줄 수도 있어서다. 그런데 빌려주는 사업의 경우 렌탈 또는 리스로 불리는 대량 구매자와 사업적인 충돌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렌탈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유는 시간이 흐를수록 자동차 구매가 조금씩 줄어들 수 있어서다. 대중교통의 발전과 디지털화가 진행될수록 자가용 이동 거리가 점차 짧아져 만들어 팔 시장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렌터카사업조합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렌터카는 이미 100만대가 넘는다. 2015년 50만대를 넘긴 후 불과 7년 만에 두 배가 됐다. 운용리스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국내 22곳의 금융사가 운용하는 자동차 리스 규모는 사상 최대인 6조1,298억원에 달한다. 금융사가 제조사로부터 자동차를 구입한 후 이용자에게 자동차를 돈으로 환산해 빌려주는 게 운용리스임을 감안하면 빌려 타는 시장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제조사도 기본적으로 빌려주는 사업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빌려주는 사람에게 차를 팔아도 기본적인 서비스는 제조사 몫이다. 사고 처리도 가능한 정비 네트워크도 가지고 있다. 특히 렌탈 사업은 제조사가 추구하는 미래 전략, 다시 말해 판매 뿐 아니라 제조물의 운행 사업에 진출한다는 목표와도 부합한다. 일부 제조사가 내부에 렌터카 사업 기능을 직접적으로 가진 배경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확장에는 적극적이지 않다. 이유는 기존 렌터카 사업자의 구매 물량이 만만치 않은 데다 당장은 만들어 팔기에도 버겁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현상일 뿐 공급망이 회복되고 생산이 다시 늘면 시장 진출에 대한 유혹(?)은 커지기 마련이다. 반도체 이슈 등이 떠오르기 전 일부 제조사가 렌터카 시장 확대에 매우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은 언제든지 제조사의 렌터카 시장 진출이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이 점에 대해 기존 렌터카 기업은 촉각을 곤두세운다. 제조사의 렌터카 진출이야말로 이들에겐 최대의 위협인 탓이다. 하지만 쉽게 확장하지 못할 것이란 예상도 한다. 이용자 관리 측면에서 소유자와 빌리는 사람은 성향이 조금 다른 데다 관리도 쉽지 않다는 점에서다. 반면 제조사는 현재 시점에선 렌터카기업도 고객인 만큼 판매에 집중할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언젠가는 제조사가 개인 또는 법인에게 직접 차를 빌려주는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이 경우 적용하는 이자율은 기존 렌터카 또는 리스기업과 비교해 비슷해 경쟁력이 없을 수 있지만 유지 관리 관점에서 차별화 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보인다.
실제 제조사의 렌터카 확대를 부추기는 것은 다름 아닌 전동화에 따른 정비 수요 감소다. 전동화로 기존 정비 서비스 이용자가 줄어든다는 점에서 서비스 네트워크 유지 방안을 모색하는데 이때는 보증 기간 이후를 눈 여겨 보기 마련이다. 보증 기간이 지난 후에도 서비스 방문이 유지되거나 증가해야 정비망이 유지되는데 이때 렌터카는 새로운 정비 수요로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어서다.
또 하나는 자율주행이다. 자율주행의 경우 기술적으로 완성해도 사업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다. 제조사 관점에서 수익은 판매인데 워낙 비싼 가격에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결국 비용 부담을 분산시키는 렌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자율주행이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게 유일한 사업적 해법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완성차기업의 렌터카 진출은 예정된 수순이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