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 의향은 감소, 제조사 증산도 부정적
앞으로 자동차를 사지 않겠다고 한다. 반면 지금 당장은 사겠다고 줄 서는 사람이 많다. 한국딜로이트가 지난 14일 발표한 자동차 구매 의향 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지난 8월 국내 소비자들의 구매 의지는 2021년 9월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 구매 지수를 산출을 위해 100명에게 물었더니 85.7명만이 구매 의향을 나타냈다는 의미다.
그런데 현재 시점에선 사겠다는 사람이 넘친다. 현대차에 따르면 9월 기준 출고를 기다리는 물량만 무려 76만대다. 이 지점에서 제조사의 전략도 새 판 짜기에 들어간다. 생산을 늘릴 것인가 아니면 이미 세운 계획량만 만들 것인가의 판단이다. 소비자들은 출고 시간이 길어지자 제조사에 생산 증대를 요청하지만 기업의 생각은 다르다. 생산의 경우 한번 시설을 확장하면 다시 줄이기 어렵다는 점에서 계획된 목표에만 도달하려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구매 의향 감소 리포트가 나오니 증산 불가 입장은 더욱 확고해지기 마련이다.
구매 의향이 감소한 이유는 생활비 상승이다. 특히 금리 인상은 여러 지출을 줄이도록 만든 가장 큰 요소다. 딜로이트 조사에서 한국 소비자 10명 중 6명이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우려했다는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그만큼 지출 항목의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자동차의 경우 새 차를 사기보다 타던 차의 보유 기간을 늘리거나 차를 바꿀 때 중고차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원자재 가격 인상도 부담이다. 글로벌 공급망이 불안해지면서 그간 줄이는데 주력해왔던 부품 재고도 다시 늘릴 수밖에 없다. 예상치 못한 지역 봉쇄, 전쟁 등이 공급망에 위협이 되자 선택한 조치다. 그러나 지나친 가격 인상은 오히려 소비자를 떠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적정선을 찾기 위해 최대한 고심한다.
제조사가 생산 물량을 저울질하자 어려움을 호소하는 곳은 판매점이다. 지난해 9월까지 현대차의 국내 판매는 54만대에 달했지만 올해는 같은 기간 49만6,000대로 전년 대비 8.1% 줄었다. 국내외 전체 판매가 290만대로 전년 대비 1% 하락이었음을 감안할 때 완성차의 내수 투입을 줄였다는 의미다. 실제 해외 판매는 240만대로 전년 대비 0.6% 증가했다. 국내 판매점마다 출고 물량이 없어 아우성치는 배경이다.
그래서 생산을 증대해 달라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이 있는 한 기업은 생산을 늘리지 않으려 한다. 게다가 소비자의 이탈 가능성도 잘 알고 있다. 제조사 시각에서 출고를 기다리는 사람 가운데 20%는 허수로 본다. 현대차를 기준하면 76만대 중에서 15만대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계약인 셈이다. 여러 차종에 계약을 걸어두고 먼저 출고되는 차를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그래서 지금의 출고 적체는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 사고 싶어도 못 사는 상황이지만 점차 사지 않겠다는 사람이 늘어날 수 있어서다. 그럼에도 기업은 최대한 계약량을 늘려 놓으려 한다. 계약이 곧 생산 물량의 보전인 탓이다. 물론 여력도 많지 않다. 글로벌 컨설팅기업 알릭스파트너스에 따르면 제조사들이 전기차 생산을 늘리면서 나타난 반도체 부족은 2024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탄소 중립에 대응하기 위해 비중을 확대해야 하는 전기차의 반도체 수요가 내연기관보다 10배 이상 많아서다. 출고를 기다리는 소비자도 답답하지만 정작 생산을 쉽게 늘리지 못하는 제조사도 고민이 많은 이유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