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가형 EV의 확산 여부 주목
지난 2009년 인도 자동차기업 타타모터스가 "나노(NANO)"를 내놔 시선을 끌었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네 바퀴 자동차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실제 "나노"는 배기량 624㏄에 4단 수동변속기를 기본으로 가격은 불과 10만루피, 우리 돈으로 250만원 내외에 머물렀다. 워낙 저렴했던 탓에 흔히 말하는 편의품목은 거의 없다. 이륜차 대체용으로 개발했으니 4명 탑승만으로도 만족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갔다. 이륜차를 대체하지 못했고 승용차로도 상품성이 지나치게 떨어져 결국 "어정쩡한 차"로 전락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태어났지만 가난한 사람조차 관심을 주지 않았던 셈이다. 그러자 타타는 "나노"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주력 소비층을 젊은 층으로 재정의하며 부활을 시도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자동차를 버리고 감각적이되 저렴한 자동차를 앞세워 "내 생애 첫 차" 성격을 부여했다.
물론 부활은 쉽지 않았다. 한번 "가난한 차"로 굳어진 이미지가 쉽게 벗겨지지 않았던 탓이다. 그 결과 2018년 "나노"는 단종됐다. 하지만 "나노" 프로젝트를 통해 "타타"는 많은 교훈을 얻었다. 이동 수단에 "자동차"라는 일반 명사가 붙는 순간 소비자들의 생각이 달라진다는 점을 깨달았다. 나아가 이륜차와 사륜차 등 바퀴 숫자에 따라 "자동차"라는 소비재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도 파악했다. 동시에 "가격"도 중요한 구매 요소라는 점도 확실하게 인식했다. 잘 팔릴 때는 연간 7만5,000대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저렴한 가격 영향력이 그나마 한때 7만대 판매의 배경이었다는 의미다.
교훈은 제품 개발에 적극 반영됐다. 그리고 저렴한 가격을 유지하되 이동의 기본 속성은 물론 소비자들의 선호 상품성을 갖추기 위한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그 결과 태어난 차종이 "티아고 EV"다. 흔히 말하는 소형 전기차인데 가격은 1만 달러, 한화로 약 1,425만원 가량이다.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지는 않지만 인도 내에선 가장 저가인 데다 최대 24㎾h의 배터리에 충전된 전력을 모두 쓰면 최장 315㎞를 주행할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캐스퍼보다 조금 큰 덩치를 감안할 때 전기 파워시스템은 꽤 경쟁력이 있는 수준이다. 보조금을 받으면 가격이 1,100만원대로 내려가 인도 내에서도 사전 예약자가 줄을 잇는다.
저가 제품 전략으로 배터리 전기차를 활용한 타타의 생각은 전기차에 붙여진 프리미엄 이미지도 일부 거들었다. 내연기관과 달리 이동 과정에서 배출가스를 내뿜지 않는 전기차의 환경친화적 성격이 일종의 "프리미엄" 가치를 형성해 "저가" 이미지를 희석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한 마디로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저렴한 차"에서 "친환경 이동을 저가 차"로 바꾸었더니 "저가"보다 "친환경"이 부각되면서 인기를 얻는다는 얘기다.
타타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그만큼 "자동차"를 바라보는 소비 심리가 복합적이라는 사실이다. 단순히 이동 수단에 머물지 않고 제품이 외부에 보여지는 이미지 또한 구매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실제 국내에서 판매되는 경차도 중대형차 못지 않은 편의품목을 구비해야 소비자들의 관심을 얻는다는 점에 비춰보면 무조건 저가가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가격은 여전히 중요한 자동차 구매 항목이다. 그리고 제조사마다 전기차 가격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조금이 언젠가는 사라질 수밖에 없어서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