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매입율, 자동차세 모두 같아
행정안전부가 내년부터 배기량 1,600㏄ 미만 비영업용 자동차를 살 때 반드시 구입하도록 돼 있는 채권(도시철도 또는 지방 공공채권)을 더 이상 사지 않도록 했다. 비영업용 소형차 구매자의 대부분이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등 경제력이 넉넉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제도 개선을 통해 매년 76만명 가량이 신차를 구매할 때 20~30만원의 지출을 줄일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자동차를 살 때 의무적으로 자치단체 채권을 사도록 한 배경은 해당 지역의 대중교통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다. 예를 들어 특정 도시의 이동성 개선을 위해 지하철 건설이 필요할 때 최대 고민은 비용 조달이다. 이때 도로를 이용하는 자동차 구매자에게 채권을 팔아 일시적으로 비용을 충당하고 최소 5년 또는 7년이 지난 후 이자와 함께 원금을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자율이 낮아 대부분의 채권 구매자는 구입 후 원금보다 낮은 금액에 즉시 되판다. 채권을 사는 사람은 5년 또는 7년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당연히 원금보다 저렴하게 구입한다. 이때 차액이 대략 20~30만원 가량이다. 행안부가 신차 구입할 때 최대 30만원 가량 부담이 줄어든다고 한 이유다. 물론 지하철이 없는 곳은 지방채권을 발행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채권 금액이다. 일반적으로 채권 금액은 정부와 자치단체가 함께 정하는데 이때 기준 삼는 것이 배기량과 비율이다. 가장 기본적으로 행정안전부는 자동차세 부과를 위해 나눠진 배기량 기준을 채권 매입에도 적용하도록 했다. 그래서 자치단체는 배기량 기준에 따라 의무 매입율을 조례로 정한다.
"조례"로 정한다는 얘기는 자치단체마다 매입율을 다르게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이 경우 일부 영업용 승용차는 채권 매입율이 낮은 곳을 찾아 등록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등록해도 운행 지역은 전국이어서 조금이라도 비용 절감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반면 자치단체는 등록대수 증가에 따른 자동차 세수 확대로 연결돼 서로 이익(?)이다.
한때 이 문제는 자치단체 간의 갈등으로 연결돼 소송으로 번진 사례도 있다. 서울 지역 채권 매입율이 높다보니 리스 및 렌터카 기업은 당연히 매입율이 낮은 곳에 차를 등록했는데 해당 자동차를 빌려타는 사람의 운행 지역이 대부분 서울이었다는 점에서 갈등이 발생했다. 따라서 행안부는 이번에 채권 매입 면제 대상을 비영업용 자동차로 못을 박았다. 영업용 승용차는 운행 지역이 전국이어서 예외로 두겠다는 의미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운사이징 엔진이 형평성 논란에 올랐다. 대표적인 사례가 쉐보레 말리부 E-터보와 쏘나타 스마트스트림 가솔린 1.6ℓ 터보다. 크기는 중형이지만 말리부 배기량은 1,341㏄이고 쏘타나 터보는 1,598㏄에 머물기 때문이다.
쉽게 보면 현대차 아반떼와 쏘나타 1.6ℓ 터보가 함께 채권 구입 면제 혜택을 받는다. 물론 구매자에게 채권 면제 차종의 확대는 반길 일이지만 탄소 감축을 위한 엔진 다운사이징이 지적하는 것은 철옹성으로 여겨지는 자동차 제도의 근간, 즉 ‘배기량’ 기준을 뿌리부터 흔든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사실 자동차에 부과된 세금은 대부분 사용 목적이 분명한 목적세다. 물론 채권은 나중에 되돌려주기에 세금이 아니지만 "의무 구입" 단서 탓에 구매자에게는 세금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세금의 기준은 여전히 배기량이다. 심지어 배출가스 기준도 배기량에 따라 다르며 자동차 크기를 분류할 때도 배기량이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배기량이 없으면 계산 자체가 필요 없이 그냥 일정한 금액을 세금으로 붙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배기량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최근 가장 뜨겁다는 현대차 7세대 그랜저 하이브리드에 1.6ℓ 터보 엔진이 들어간다고 한다. 배기량이 1.6ℓ 미만이니 당연히 채권 구입 면제 대상이다. 그랜저 7세대도 대부분이 사회 초년생, 신혼부부 등 경제력이 넉넉지 않은 사람들이 살까? 배기량 기준이 점차 형평성을 잃어가는 이유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