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공장, 중국으로 모두 이전
1956년 프랑스와 영국,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가로지르는 수에즈 운하를 점령하자 이집트는 대형 선박을 침몰시켜 운하를 폐쇄해버렸다. 그 탓에 유럽으로 들어가는 원유 선박이 묶이자 기름 값이 폭등했다. 영국은 석유 배급제를 도입했고 대형차 판매는 곧바로 주저 앉았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내 여러 국가들이 앞다퉈 작은 차를 개발한 것도 고유가를 돌파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던 셈이다.
당시 영국 최대 자동차기업인 BMC(British Motor Corporation)도 상황에 대응했다. 특히 영국에선 덩치 큰 독일차들이 도로를 많이 점령했는데 BMC의 최고 경영자였던 레오나드 퍼시는 영국인들의 차를 만들기로 하고 자동차 천재로 불리던 알렉 이시고니스에게 임무를 맡겼다. 알렉은 독일차에 맞설 대형차, 중형 패밀리카, 그리고 소형차를 계획했다. 그러나 수에즈 갈등이 벌어지자 우선적으로 소형차를 먼저 내놓게 된다. 이 차가 바로 1959년 등장해 "미니(MINI)"의 원조로 불리는 "모리스 마이너 미니" 또는 "오스틴 세븐"이다.
배기량 848㏄에 590㎏에 불과한 미니는 깜찍한 디자인으로 곧바로 영국의 국민차 반열에 올랐다. 게다가 덩치는 작아도 "최대한 미니(Maximize Mini)"를 내걸고 남자 성인 4명(4MAN)이 거뜬히 탈 수 있음을 강조했다. 크기 자체가 일상 생활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강조한 셈이다. 덕분에 미니는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매년 10만대 이상 팔려 나갔다.
워낙 주목받았던 덕분에 유명인사도 미니의 단골 고객이 됐다. 영국 가수 존 레논이 미니를 좋아했고 영국 문화를 세계에 알린 비틀즈의 멤버 폴 메카트니도 미니 판매에 일조를 했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한국에서 잘 알려진 인물은 영국의 대표 희극배우 "미스터 빈"의 주인공 로완 아킨슨이다. 국내에선 1990년부터 TV에서 방영돼 많은 웃음을 주었는데 화면 속 주인공이 늘 타고 다니던 차가 1977년에 생산된 미니다.
2000년 미니를 인수한 독일의 BMW도 미니의 영국 정체성은 최대한 살렸다. 여전히 "미니"는 영국을 대표하는 자동차로 각인됐고 램프 등의 디자인에도 영국을 상징하는 유니온잭을 적절히 활용했다. 생산 또한 영국 내 옥스포드 공장에 배치해 "미니=영국차"임을 부각시켰다. BMW 인수 후 첫 번째 미니가 생산된 곳이 옥스포드 공장이며 그때가 2001년 4월26일이다. 당시 BMW는 공장에 새로운 페인트 시설을 만들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축구장 5개 면적의 지붕에 솔라 패널을 설치하는 등 많은 투자를 단행했다. 이를 두고 공장 총괄자였던 울리버 집세는 제조업의 위대한 이정표가 바로 옥스포드 공장이라며 자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BMW그룹 회장에 오른 울리버 집세에게 자부심을 드러냈던 영국 옥스포드 공장은 더이상 위대한 이정표로 여기기 어려운 모양이다. 미니(MINI)의 전기차 생산 시설을 영국에서 중국으로 모두 옮기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부터 미니 일렉트릭과 차세대 전기차 에이스맨은 중국 동부에 위치한 장쑤성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2025년까지 영국에서 생산될 예정이었지만 중국 내 인기와 생산 원가를 고려할 때 영국에서 벗어날 때라고 여긴 셈이다.
그 결과 영국 옥스포드 공장에선 내연기관 생산만이 남는데 영국 정부가 2030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를 시행하고 이후 2035년까지 여러 나라들이 동일한 제도 시행을 예고한 만큼 옥스포드 공장은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더불어 한국에서 판매되는 미니 일렉트릭 또한 앞으로는 볼보 S90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 오게 된다. 중국산 미니를 두고 영국을 상징하는 문화적 산물로 여겨야 할지, 아니면 전기차 강국인 중국산으로 생각해야 할 지 아리송한 아침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