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리 토끼 모두 잡아야 지속 가능
한국에서 생산되는 전기차가 주력으로 가야 할 시장은 미국일까? 아니면 중국일까? 이 물음에 명쾌한 답변을 내놓을 사람은 거의 없다. 당장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이슈로 떠오르자 미국이 우선인 것 같지만 시장 크기만 보면 결코 중국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기본적으로 전기차에 대한 중국의 자신감은 규모에서 비롯된다. 중국자동차제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내 자동차 판매는 2,868만대에 달한다. 한국 인구의 절반보다 많은 숫자가 판매된 셈이다. 참고로 같은 기간 한국은 국산 및 수입을 모두 더해 167만대 가량이다. 한국보다 무려 17배 가량의 자동차가 많이 팔리는 국가다. 전기차 시장도 막강하다. 지난해 전기차는 BEV 536만대와 PHEV 151만대 등 모두 687만대가 판매됐다. 전체 판매에서 전기차 비중만 24%에 달한다.
반면 세계 2위 미국은 지난해 1,390만대가 판매돼 중국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시장조사업체 모터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이 가운데 전기차는 BEV 72만대와 PHEV 8만대 등 모두 80만대 가량이다. 전체 자동차 판매에서 EV 비중도 5.7%에 머문다. 중국에 비하면 절대적인 열세지만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다.
두 나라가 제시한 전기차의 미래 전략은 혁명(?)에 가깝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2030년 1,390만대의 50%인 695만대를 전기차로 바꾸기로 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공급망 견제를 위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도입했다. 물론 중국 또한 같은 기간 전기차 비중을 크게 늘리는데 맥킨지에 따르면 2030년 중국의 전기차 판매는 신차의 절반, 지난해를 기준할 때 1,430만대로 여전히 미국의 두 배 규모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현대차그룹은 2030년 국내 전기차 생산을 144만대로 잡고 있다. 해외 생산도 179만대에 도달한다는 목표다. 여기서 관점은 국내 생산 물량이다. 연간 170만대 내수에서 144만대를 모두 흡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탓이다. 정부의 친환경차 로드맵에 따르면 2030년 전기차(BEV, PHEV) 누적 보급대수는 300만대다. 2025년 누적 113만대를 달성하고 5년 사이에 187만대를 늘려야 한다. 그러자면 2026년부터 연 평균 37만대가 등록돼야 하는데 순차적으로 확대해도 2030년 한 해에 생산될 144만대 가운데 100만대 가량은 해외로 내보내야 한다.
여기서 고민이 바로 어디로 내보낼 것이냐다. 가장 좋은 선택은 시장 규모가 큰 중국과 미국이지만 서로 전기차 주도권 경쟁을 펼치며 견제도 적지 않은 만큼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전기차의 필수 항목인 배터리 선택이다. 완성차로 수출 시장을 조율하는 게 아니라 배터리의 원산지로 시장을 구분하는 방법이다. 중국으로 향하는 자동차는 중국산 배터리를 활용하고 미국 수출에는 한국산 배터리를 탑재하는 방안이다. 서로의 전기차 및 배터리 견제를 피하는 교묘한 방법이다. 그리고 동시에 갈등이 불거질 소재의 원산지 다양화도 필요하다. 배터리 싸움이 결국 소재 전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최근 국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건을 두고 여론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국산 전기차가 미국이나 중국에서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도 미국이나 중국산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지 말자는 의견이 확대되는 중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조금 차별(?)은 오히려 국산 전기차의 수출 가능성을 위축시킬 수 있음도 직시해야 한다. 더불어 국내 생산 배터리의 소재가 어디서 오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보조금 갈등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의 미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한국에는 보다 유리하다는 의미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