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력 전환 시대에 도래한 또 다른 보호 장벽
-중국의 소재 공급망, 피할 방법은 없어
흔히 전기차의 전력과 배터리를 밥과 그릇에 비유한다. 그리고 모터는 그릇(배터리)에 저장된 밥(전기)을 먹고 회전력을 일으켜 바퀴를 돌린다. 따라서 전기차의 핵심으로 꼽히는 배터리는 기본 단위인 셀에 전기를 많이 저장할수록 주행거리 확장에 유리해진다. 하지만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무한정 셀을 많이 쓰는 것도 곤란하다. 중량 부담 탓에 단위 효율(㎾h/ℓ)이 떨어지는 데가 비싼 배터리 가격이 소비자들의 전기차 구매 부담을 유발할 수도 있어서다.
그래서 모든 제조사들은 언제나 가격과 주행거리, 그리고 효율의 삼각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선택 가능한 옵션은 무척 다양하다. 가장 먼저 전력을 담는 배터리를 소재에 따라 고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삼원계(NCM)와 인산철(LFP)이다. 삼원계는 전기를 많이 담을 수 있지만 가격이 비싸다. 반면 인산철은 삼원계 대비 전기 저장능력은 열세지만 가격이 저렴한 게 장점이다.
두 번째 선택은 배터리 용량인데 이때 관점은 오로지 1회 충전 후 주행거리다. 이 과정에서 제조사는 충전 인프라가 늘어나는 만큼 굳이 500㎞ 이상을 확보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되묻는다. 반면 소비자는 그 이상을 원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때 충돌하는 것은 구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가격이다.
기본적으로 가격을 낮추려면 용량도 최소화하고 전기 저장 능력도 다소 떨어지는 배터리를 사용하면 된다. 흔히 말하는 인산철 배터리다. 게다가 인산철 배터리의 전기 저장 능력이 개선되면서 굳이 비싼 삼원계를 사용할 필요성이 있느냐는 질문도 쏟아진다. 대표적으로 경차급을 전기차로 만들었을 때 제조사가 마음만 먹으면 1회 충전 주행거리는 500㎞ 이상으로 만들 수 있다. 용량이 큰 배터리를 탑재하고 셀 소재도 삼원계로 구성하면 된다. 제품 측면만 보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그러나 이때 가격은 이미 경차가 아닌 대형 고급차 수준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삼원계를 인산철로 바꾸면 주행거리는 400㎞ 내외로 줄어드는 반면 가격은 30% 이상 저렴해진다. 둘 가운데 소비자는 어느 쪽을 선택할까?
그런데 삼원계와 인산철 배터리는 만들어내는 주력 국가가 다르다. 한국은 삼원계, 중국은 인산철이 주력 제품이다. 그러니 한국과 중국은 서로의 주력 배터리를 앞세워 경쟁이 불가피하다. 성능과 가격의 차이에서 한국은 어떻게든 삼원계의 가격을 낮추려 노력 중이고, 중국은 인산철의 성능 향상에 사활을 건다. 동시에 한국은 인산철 배터리 시장에 기웃대고 중국은 삼원계도 만들면서 가격을 앞세워 점유율을 확대하는 중이다. 물론 그 사이 한국은 삼원계의 소재 변화(하이 니켈)와 새로운 물질 등을 첨가하며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중이다.
이런 이유로 상대방 국가의 주력 배터리에 지급하는 보조금도 차별적이다. 중국은 전기차 시장 초창기 한국산 삼원계에 보조금을 주지 않았고 한국은 중국산 인산철 배터리의 보조금을 올해부터 삭감했다. 이른바 에너지 밀도 기준에 따른 결과다. 이를 두고 한국형 IRA로 부르기도 하는데 여기에는 복잡한 한국의 배터리 산업과 정치적 판단이 들어가 있다.
배터리 셀을 완제품으로 볼 때 한국이 주력하는 삼원계의 치명적인 약점은 소재의 공급망이다. 동일 성능일 때 중국산 소재 가격이 매력적이어서 오랜 시간 필요한 물질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받았고 지금도 여전하다.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기 이전부터 그래왔으니 삼원계의 소재 공급망에서 한국산 배터리의 중국 역할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다. 이 말은 배터리 셀 완제품은 한국과 중국이 경쟁하되 둘 모두에 사용되는 소재는 애초에 경쟁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뜻이다. 그러니 중국이 소재 공급을 줄이면 한국은 배터리 생산이 감소하고 이는 곧 한국산 전기차 생산 물량 축소로 연결된다.
이런 가운데 환경부가 올해부터 중국산 인산철 배터리 탑재 차종의 보조금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른바 국내 여론에 대한 나름의 대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국산 삼원계도 중국이 보내주는 소재로 만드는데 인산철 배터리만 차별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분위기다. 게다가 중국도 이제는 삼원계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만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산 인산철 배터리가 한국에서 보조금을 적게 받는다면 한국산 삼원계의 가격이 대폭 오르도록 소재 공급을 조절하는 카드도 열어 놨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그야말로 배터리 산업을 놓고 벌어지는 정치와 산업 보호 현장이 갈등하는 곳이 바로 한국인 셈이다. 만약 중국이 소재 공급을 제한하면 한국은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오히려 그게 걱정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