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국내 판매 가격, 보조금 받기 위해 낮춰
-아시아 공장, 한국 아닌 인도네시아 선택
지난해 말 윤석열 대통령이 테슬라자동차 일론 머스크 최고 경영자와 화상 대화를 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테슬라의 한국 투자(공장 건설)를 요청했고 일론 머스크는 (한국이) 최상의 후보지 가운데 하나라며 한국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테슬라의 아시아 투자는 인도네시아로 기울었다. 그러자 국내에서 뒷말이 무성하다. 완성차 공장을 짓는 프로세스를 감안할 때 한국 대통령의 투자 요청을 받았을 때는 이미 인도네시아 공장으로 결론 났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우선, 적극적인 투자 검토 등의 립서비스(?)를 날린 것은 대통령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형식적인 멘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해석이다.
흥미로운 것은 온라인 미팅 이후 내보인 테슬라의 조치다. 테슬라는 한국 정부가 올해 전기차 보조금 범위를 확정하자 곧바로 가격을 내리며 자신들의 여러 제품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어쨌든 테슬라로선 가격을 내린 것이니 이 부분을 한국에 대한 투자로 해명할 수도 있다. 가격 할인은 테슬라의 수익을 일부 한국 소비자에게 내어주는 것인 만큼 그 자체가 기여라고 말이다. 바이든 대통령과의 마찰도 피하지 않는 일론 머스크의 성격을 감안할 때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추측이다.
사실 한국은 테슬라에게 고마운 곳이다. 절대 판매 물량은 연간 1만5,000대로 많지 않아도 테슬라를 사려는 사람이 꾸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은 전기차 보조금도 많이 주는 국가에 속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대통령이 공장 투자를 요청하자 일론 머스크는 한국 투자에 대한 적극 검토를 운운하며 대응한 셈이다.
한국의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의 화상 대화를 새삼 끄집어내는 이유는 한국 투자 자체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서로가 잘 알고 있어서다. 이 말은 윤석열 대통령도 한국의 강력한 노조가 있는 한 테슬라가 아시아 공장 설립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잘 알고 일론 머스크도 여러 조건을 고려할 때 한국은 투자의 부적격 국가로 여겼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화상회의에서 한국 대통령은 요청했고 일론 머스크는 실현되지 않을 얘기로 화답했다. 한 마디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던 것이다.
사실 한국은 자동차 부품 클러스터가 잘 조성돼 있고 관련 중소 기업도 기술력이 뛰어나 아시아 지역에선 완성차 공장이 들어서기 좋은 나라로 꼽힌다. 그러나 정작 설립하면 그때부터 강력한 노조 입김에 예외 없이 기업이 시달린다. 관련해 글로벌 굴지의 완성차기업 최고 경영자가 한국을 방문해 남긴 얘기는 여전히 전설로 회자된다. 20여년 전 비밀리에 한국을 방문한 해외 완성차 기업의 총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는 한국의 몇몇 도시를 둘러보며 투자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고 검토를 진행했다. 그러나 최종 결정 과정에서 노조가 장애물로 떠올랐다. 한국의 노사 관계자는 성장을 위한 시너지보다 정치적 적대 관계가 많아서다. 이런 문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 결국 한국 투자 검토는 중단됐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의 예측대로 노사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조의 힘이 강해지면서 이제는 퇴직자 복지까지 현직 근로자들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판매하는 이동 수단의 이익률, 쉽게 보면 가격을 높여야 하는데 향후 시장을 지배하게 될 전기차는 완성차기업이 가격을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 배터리 가격의 변동성이 큰 데다 이익 기반이 되는 보조금도 점차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어서다. 결국 스스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지속 생존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해외 기업을 한국에 유치하려는 정부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기본적인 혜택은 한국에 공장을 설립할 때 각종 법인세를 내려주거나 사용 가능한 토지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누구든 제품을 만들면 시장에 내다 팔아 이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고, 이때는 해당 국가의 시장 규모를 살피는 게 당연한 과정이다. 이런 관점에서 한국은 완성차 공장이 들어서기 어려운 나라다. 그리고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투자를 요청한 것은 되지 않더라도 유치 의지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보다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중요 과제이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