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보조금 없애고 충전 인프라 확충에 투자
-제조사 스스로 가격 경쟁력 확보 촉진 차원
보조금이 없다면 소비자들이 전기차를 살까 사지 않을까? 물론 가격 부담을 견뎌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구매를 다시 고려하는 게 아직은 일반적이다. 그만큼 전기차를 친환경이 아니라 친경제로 접근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서다. 그럼에도 전기차 보조금을 과감하게 중단하고 사용처를 전환하는 나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래야 제조사의 기술 경쟁이 촉진되고 그 결과 글로벌 산업 주도권이 선점될 것으로 여기는 셈이다
대표적인 곳이 영국이다. 영국은 지난해 6월 대당 5,000만원 이하 전기차를 살 때 지급하던 230만원의 보조금을 중단했다. 그간 2조1,800억원을 투입해 전기차를 50만대로 늘렸으니 이제는 직접 지원 대신 전기차 보유자의 이용 편의성 개선을 위한 충전망 확충에 세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이어 독일, 스웨덴 노르웨이 등도 전기차 보조금을 점차 줄이거나 아예 없앤다는 계획이다. 그간 ‘친환경’을 명분으로 지원했지만 ‘친환경’은 더이상 지원 대상이 아니라 모두의 동참이 필요한 의무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전기차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었던 중국이 올해부터 보조금을 중단했다. 그러자 전기차 판매는 곧바로 반토막 났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 중국 내 전기차 판매는 33만2,000대로 지난해 12월 대비 48.3%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33만대가 팔렸다는 점에서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변했다는 시각도 있지만 보조금 중단에도 33만대가 판매된 배경은 지방정부 지원금 때문이다. 국가 보조금은 없어도 여전히 지방 정부 보조금이 적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 상하이시의 경우 내연기관차를 BEV로 교체하면 1,470만원 가량의 보조금을 준다. 만약 지방 정부도 보조금을 없앴다면 중국 내 전기차 판매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중국의 과감한(?) 보조금 중단 이면에는 전기차에 대한 자신감이 숨어 있다. 보조금을 중단하면 중국 내 여러 전기차 제조사 스스로 원가 절감을 위한 기술 개발에 매진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글로벌 시장 내 경쟁력도 향상된다는 논리다. 살아남으려면 보조금 없이도 소비자들이 구매 가능한 수준의 가격을 제조사마다 확보하라는 요구였던 셈이다.
그렇다면 제조사는 어떻게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까? 당연히 배터리 가격을 낮추는데 주력하기 마련인데 이 말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용량이 작은 배터리에 전력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 한다는 의미다. 실제 중국의 경우 최근 인산철 배터리(LFP) 셀의 배열과 팩(pack)의 탑재 위치 변경 등을 통해 최적의 가격대를 찾아가는 중이다. 최근 CATL 등이 선보인 CTP(Cell to Pack) 등은 차체 중앙을 가로지르는 구동축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배터리를 위치시켜 주행거리와 효율, 가격의 3박자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보조금 중단을 통한 기술 향상을 유도하는 사이 한국은 얼마 전 전기차 보조금을 확정했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술 향상 유도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일단 지난해 항목에 포함됐던 에너지효율 조건이 올해부터 삭제됐다. "㎾h/㎞"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대신 충전기의 다량 설치 유무, 서비스센터 전산망 구축 여부 등이 새로 조건에 포함됐다. 제조사의 기술 향상을 유도하기보다 소비자 편익 개선에 보다 치중한 셈이다. 그나마 전기차 기술혁신 조건이 있는데 여기서 "혁신 기술"이 의미하는 내용은 제품 기술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배터리에 담긴 전력의 외부 사용 여부가 포함됐는데 이는 혁신이 아니라 보편 기술에 가깝기 때문이다. 반면 1회 충전 거리 기준은 오히려 더 늘렸다. 증가하는 전기차 대비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판단 하에 효율(㎾h/㎞)보다 주행거리에 보다 초점을 맞췄다는 뜻이다.
하지만 내연기관과 마찬가지로 배터리 전기차 또한 앞으로는 효율이 소비자들의 관심사로 떠오를 것은 자명하다. 충전 인프라가 늘어날수록 주행거리 불안감이 줄어들 수 있어서다. 그래서 흔히 전기차 기술은 배터리에 담을 수 있는 전력을 의미하는 에너지 밀도와 1㎾h로 주행 가능한 거리를 중요하게 여긴다. 이 경우 1㎾h로 갈 수 있는 거리를 확대하면 용량이 작은 배터리를 사용해 가격을 낮출 수 있어서다. 더불어 1㎾h의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경량화에도 매진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중국의 보조금 중단은 점차 전기차의 글로벌 경쟁력이 가격과 효율로 이동하고 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사이 한국은 효율 보조금을 없애버렸으니 글로벌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