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 CATL" 합작에 양국 정부 모두 제동
전기차 민족주의. 요즘 글로벌 시장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 그리고 유럽연합 간의 전기차 산업 민족주의가 고개를 들면서 국내 전기차 기업 또한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다. 모두가 문을 최대한 폐쇄하되 자체 경쟁력이 갖추어질 때까지 내부 산업을 육성하려는 욕망 탓이다. 내연기관은 시장이 성숙한 만큼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싸움이 오래 지속됐지만 전기차는 이제 막 태동기에 들어선 탓에 경쟁보다 보호로 가겠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미국의 IRA, 유럽의 탄소국경세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중국 또한 보조금 지급에 배터리 소재의 차별 기준을 둔 사례는 익히 알려져 있다. 그에 맞게 한국은 "소재"라는 단어의 또 다른 표현인 "에너지밀도"를 동원해 중국산 전기버스 보조금을 줄이기도 했다. 서로 자신들의 안방을 지키기 위해 제품이 아니라 정치에 기댄 보호 경쟁을 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압박받는 곳은 전기차 제조사다. 어디서, 어떤 소재로 전기차를 만드냐에 따라 현지 국가의 보조금이 달라지고 동시에 구매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시장 내 경쟁력이 떨어져 전기차 판매가 어려운 것은 당연지사다. 따라서 제조사는 어떻게든 갈등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조금을 포함해 이익을 최대한 추구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 자동차 기업인 포드와 중국 배터리 기업인 CATL이 손을 잡았다. 포드는 미국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배터리의 미국 생산을 결정했고 나아가 전기차 가격 경쟁력을 위해 저렴한 배터리를 쓰기로 했다. 반면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은 미국 진출 욕망을 가진 만큼 포드에게 저렴하되 대중적으로 많이 쓰이는 LFP 배터리 셀 제조기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렇게 생산된 배터리 셀은 미국산 포드 전기차에 적용되고 "Made in USA"로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자 정작 갈등 당사자인 두 나라의 위협(?)이 쏟아진다. 미국 내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 의원은 최근 바이든 행정부에 두 회사의 협업 재검토를 요청했다. 자칫 포드가 CATL에 끌려가 미국의 안보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나아가 셀 제조는 물론이고 소재 공급선도 오히려 포드가 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반해 중국 정부도 양 사의 기술제휴를 두고 조사할 내용은 없는지 검토에 착수했다. CATL의 LFP 기술(소재 배합)이 자칫 포드로 흘러가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런데 기업 시각에서 보면 두 나라의 산업 민족주의는 이익 추구 과정의 장애물일 뿐 진출 자체가 금지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 근본적으로 각 나라에서 전기차 민족주의가 나타나는 현상은 정치와 기업의 서비스 지향 대상의 규모와 범위가 물리적으로 다른 탓이다. 특정 국가의 정치는 그 나라 "국민"이 서비스 대상이며 이들이 투표로 지도자를 선출한다. 반면 기업에게 서비스 대상은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며 투표가 아닌 주주들이 최적의 경영자를 선출한다. 그러니 기업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는 반면 정치는 물리적으로 경계선 안에 거주하는 국민들의 견해를 중시하게 된다. 포드와 CATL이 서로의 이익을 위해 손을 잡았음에도 이들의 모기업이 속한 미국과 중국 정부가 둘의 만남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배경이다.
여기서 예의주시 할 대목은 보호를 앞세우는 국가들의 공통점이다. 기본적으로 인구가 많고 핵심 기술을 보유한 곳들이다. 초기 산업 경쟁력을 충분히 확보할 만한 자체 시장 규모가 이들이 갈등을 벌이는 근본 원인이다.
여기서 우려되는 것은 미국과 중국 등의 거대 시장 충돌이 만들어 낼 높은 진입 장벽이다. 이 경우 장벽을 넘을 수 없다면 현지화가 필수다. 그리고 현지화가 진행될수록 국내 생산은 더욱 어려워지는데 실제 오는 2030년 한국에서 연간 144만대를 만들겠다는 현대차그룹의 목표도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연간 180만대가 판매되는 한국은 전기차 산업을 보호해야 할까? 아니면 개방하되 이를 명분 삼아 상대 국가에 동등 지위를 요구해야 할까? 선택은 우리의 몫일 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