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전 불안감 해소가 보급 확대의 관건
유럽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유럽에서 판매된 승용차는 모두 76만대다. 연료별로는 여전히 휘발유차가 28만8,325대로 37.9%의 점유율을 차지할 만큼 대부분이지만 BEV도 7만1,984대가 등록돼 9.5%의 비중을 나타냈다. 그러나 휘발유차 다음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하이브리드(HEV)로 19만7,982대가 판매돼 2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유럽 소비자의 63.9%가 휘발유 엔진 또는 휘발유 기반의 하이브리드를 찾은 셈이다.
이런 흐름은 한국도 다르지 않다. 국토부 자동차 등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판매된 HEV는 21만1,304대로 2021년과 비교해 14.3% 증가했다. 디젤 구매 억제에 따라 휘발유로 수요가 옮겨 간 상황에서 디젤에 버금가는 고효율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휘발유 HEV 선호도가 높아졌던 셈이다.
물론 유럽에선 BEV의 점유율도 높아졌다. 지난달 유럽연합의 BEV 판매 비중은 9.5%로 2022년 12월과 비교해 22.9%P 증가했다. 독일이 보조금을 줄이며 BEV 판매가 하락했음에도 다른 나라들의 보조금 정책이 유지된 덕분이다.
하지만 독일도 HEV의 인기는 상승세다. 지난달 독일 내 승용차 판매는 모두 17만9,247대로 전월 대비 2.6% 줄었다. 연료별로는 여전히 휘발유차가 6만9,922대로 39%를 차지했는데 그 뒤를 이어 휘발유 하이브리드가 4만1,919대로 23.4%를 기록했다. 3위는 3만9,230대의 디젤, 4위는 1만8,136대로 10.1%의 점유율을 나타낸 BEV, 그리고 플러그인 하이브리드가 8,853대로 4.9%를 차지했다.
그렇다면 전기차 보조금을 아예 없앤 영국은 어떨까? 지난달 영국은 모두 13만1,994대의 승용차가 판매됐고 휘발유차가 5만8,973대로 44.7%의 비중을 차지했다. 뒤를 이어 하이브리드가 4만1,338대로 31.3%에 달했다. 영국도 다른 국가와 크게 다른 점 없이 휘발유 및 HEV가 선전했던 셈이다.
그런데 단순히 판매 숫자를 넘어 영국과 독일 시장에 나타난 일종의 연료별 판매 흐름은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바로 BEV의 추세인데 독일의 경우 올해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830만원에서 623만원으로 축소하자 전기차 판매도 1만8,136대에 머물며 비중이 10.1%로 하락했다. 하지만 독일 내에선 보조금 삭감에도 BEV 판매 하락이 예상보다 적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중이다. 나아가 영국은 보조금을 아예 없앴음에도 BEV 판매가 1만7,295대로 13.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전월 비중 대비 19.8% 증가한 숫자다. 보조금 없이도 BEV 판매가 이제는 주춤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프랑스의 사례도 비슷하다. 지난달부터 보조금을 830만원에서 700만원 정도로 낮췄음에도 BEV 판매는 1만4,629대로 오히려 전월대비 비중이 43.2% 증가했다.
이처럼 유럽 내 여러 국가들이 전기차 보조금을 축소하는 대신 팔을 걷어붙이는 정책은 상용 전기차 보급과 충전망 확대다. 영국은 2030년까지 16억 파운드, 한화 약 2조5,200억원을 투입해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소도시는 물론 도심에 확보된 공공 노상 주차장에 충전기를 모두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한 마디로 보조금이란 마중물로 전기차 보급에 어느 정도 성공했으니 이제는 확대 정책으로 구매자들의 충전 불안감을 해소시키는데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그리고 유럽연합의 전기차 보급 정책은 국내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늘어나는 전기차 대비 충전망 확충이 뒤따르지 못해서다. 게다가 정부가 지원하는 충전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완속에 집중돼 전기차 구매 예정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다. 또한 보조금은 설치 때만 지급돼 사후 관리가 미흡한 충전기도 부지기수다. 보조금을 전기차 이용자가 많은, 다시 말해 전력 사용량에 비례해 지급하자는 제안이 등장한 배경이다. 충전기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용 장소와 충전 시간인 까닭이다.
따라서 한국도 이제는 전기차 보급 대수보다 이용 편의성 확충에 집중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점진적으로 내연기관 판매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칫 충전망의 효율적 배치에 실패한다면 충전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