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전기차 가격을 낮출 것인가
토요타가 놀랬다. 생산 비용의 50%를 줄이겠다는 테슬라의 발표가 결코 허황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테슬라 라스 모래비 생산 부문장은 최근 열린 "투자자의 날"에서 생산라인의 공정을 획기적으로 줄여 조립 비용을 절반으로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소비자들이 선호하지 않는 옵션을 아예 배제하는 강수(?)도 선택하기로 했다. 대표적으로 선루프는 생산 비용 절감의 저해 요소로 판단해 그냥 없애기로 했다. 소비자 선택보다 생산 이익을 우선 고려하겠다는 의미다.
옵션 외에 비용을 낮추는 방법도 확대한다. 공장에 사람 대신 로봇을 적극 활용하고 여러 용접이 필요한 차체도 최대한 일체형으로 만들어 공정을 줄인다는 복안이다. 동시에 "셀-모듈-배터리팩"으로 이어지는 핵심 공정의 개선점도 찾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자 오랜 시간 생산 비용 절감에 매진해 왔던 기존 완성차기업들의 시선이 테슬라로 쏠리고 있다. 테슬라의 원가 절감이 시장 내 가격 경쟁력으로 직결될 경우 포드의 짐 팔리 CEO가 예측한 2만5,000~3만 달러 전기차 시대가 한층 빨라질 수 있어서다. 지금의 속도라면 테슬라가 먼저 3만 달러 미만 고지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게다가 테슬라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값이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도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테슬라의 생산 비용 절감에 가장 놀란 곳은 토요타다. 내연기관 업계에선 오랜 시간 생산 비용 절감의 모범기업으로 여겨진 곳이 토요타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토요타는 생산 현장의 낭비 요소를 없앤 "토요타 생산 방식(Toyota Production System)"을 확립했을 만큼 생산 부문의 원가 절감 노력은 유명하다.
하지만 테슬라 제품을 뜯어 본 토요타는 놀라움을 나타냈다. 일부 외신에 따르면 테슬라 모델 Y를 해체한 토요타 엔지니어들이 내뱉은 말은 "예술 작품"이었다고 한다. 배터리와 차체의 구조적인 일체화를 통해 공정을 줄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술 작품" 단어 뒤에 쏟아낸 말이 더 흥미롭다. 토요타는 모델 Y를 해체 분석한 결과 추가로 100㎏의 감량 가능한 부분도 찾아냈다고 말한다. 이 말은 전기차 전용 플랫폼 개발에 나서는 토요타가 테슬라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플랫폼 개발 능력 및 생산 비용 절감에는 오히려 자신감을 보이는 것으로 읽히는 부분이다.
전용 플랫폼 개발에 착수하면서 토요타가 내놓을 BEV는 2030년까지 12종이다. 이를 통해 테슬라를 정조준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반면 테슬라는 같은 기간 내연기관까지 포함한 토요타의 연간 판매대수 1,000만대를 훌쩍 넘는 2,000만대에 도달하겠다고 공언했다. 업계에선 실현 불가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지만 테슬라의 야망(?)은 매우 도전적이다. 탄소 배출권이 아닌 자동차 판매로 수익을 실현하면서 추가 차종 개발비도 점차 확보할 수 있게 됐고 주식 가치도 높아 필요하면 시장에서 재원을 조달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글로벌 전기차 경쟁은 점차 규모의 싸움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 말은 기존 내연기관 제조사의 전기차 전환 속도가 한층 빨라진다는 점을 의미한다. 내연기관이 상대적으로 빨리 축소되고 전기차 규모 확대가 시급하다는 얘기다. 유럽연합이 2035년 내연기관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두고 이탈리아와 독일이 반대해 아직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대세는 멈추지 않는다. 이탈리아는 내연기관 산업의 몰락을 우려한 것이지만 독일은 전환 속도가 빨라 이탈리아와 상황이 다르다. 그럼에도 독일이 합의를 지연시킨 이유는 자신들이 글로벌에서 주도하는 수소 기반의 액체 합성연료 사용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독일의 속내는 BEV와 연료를 바꾼 내연기관을 동시에 추진해 이른바 모빌리티 파워트레인 분야의 주도권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테슬라는 BEV의 속도를 높이고 토요타는 본격 가동에 들어갈 태세다. 바야흐로 전기차와 액체수소 내연기관 등 친환경차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