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감축 위기에 각국 정권도 위기감 고조
2025년 시행될 내연기관 자동차의 마지막 배출규제가 각 나라의 정치 지형을 바꿀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일자리에 미치는 파급력이 절대적이어서다. 그러자 자동차산업 비중이 높은 나라를 중심으로 "친환경" 전략의 면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분출되는 중이다.
지난해 11월 EU는 2025년부터 승용차의 배출규제를 한 단계 강화하기로 했다. 흔히 언급되는 유로 배출규제 7단계, 즉 유로7 배출기준이다. 연료별로 차등했던 질소산화물 배출은 연료와 무관하게 ㎞당 60㎎ 이하로 줄여야 하고 유로6 규제에는 없었던 브레이크 입자 배출, 타이어 미세플라스틱, 암모니아, 아산화질소, 포름알데히드 등의 기준이 강화되거나 신설된다.
하지만 이보다 제조사들이 더욱 까다롭게 느끼는 항목은 시험 기준이다. 실주행 도로시험을 전제로 주행 때 기온은 섭씨 35도에서 45도로 높이고 주행도로의 해발 고도는 1,600m에서 1,800m로 상향된다. 그만큼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희박해져 배출 기준 충족에 어려움이 더해지는 셈이다. 동시에 "5년 또는 10만㎞" 이내 배출 부품 내구성도 "10년 또는 20만㎞"로 늘어난다. 이것도 모자라 일부 상용차는 배기 계통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무선으로 해당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물론 이런 기준은 바퀴 달린 모든 것에 적용하는 만큼 전기차도 충족해야 한다. 한 마디로 203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1990년 수준 대비 55% 줄이자는 "Fit for 55"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다.
그러자 반발도 거세다. 탄소 배출과 관련해 중요한 것은 "억제-중립-감축"의 단계적 조치인데 "억제"와 "중립"을 뛰어넘어 곧바로 "감축"으로 직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 독일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체코 루마니아, 포르투갈, 슬로바키아, 폴란드, 헝가리 등은 유로7 조건이 현실적이지 않다며 EU의 계획에 반대를 외치고 있다. 게다가 규제를 충족하면 평균 1,000만원 가량의 차 값이 올라 소비자들의 제품 구매 부담으로 연결되고 이는 다시 자동차공장의 일자리를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고 우려한다.
실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체코에 기반을 둔 폭스바겐그룹 산하 스코다는 유로7이 시행되면 부득이하게 3,000명을 감원해야 하고 가격 인상에 따라 소형차는 생산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평균 1,000만원 가량의 차값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저소득 계층이 구매하는 소형차의 경제적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탓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오히려 가격이 비싼 전기차로 갈아타는 것 또한 쉽지 않다. 결국 소득 격차에 따라 이동의 자유도에 차별(?)이 발생할 경우 해당 국가의 국민들이 정치권에 불만을 쏟아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때마다 정권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의미다. 불만을 달래기 위해 보조금을 동원하는 방법이 있지만 전기차도 재원 부족으로 보조금을 줄이는 마당에 내연기관에 보조금을 주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비단 저 멀리 유럽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국 또한 유로7 규제에 대응하려면 기업이 자동차 가격을 올리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인상 금액이 차종을 가리지 않고 평균 1,000만원에 달한다면 경제적 민감도가 높은 중소형차 부문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때는 내수와 수출을 가리지 않고 소형차 생산이 줄어 결국 일자리 감축으로 직결된다. 유럽연합이 유로7을 도입하면 한국도 배출 규제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자리 유지를 위해 기준을 유예하면 오히려 친환경 산업에 역행하는 것이어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야말로 "진퇴양난"이다. 그렇다고 불과 2년 만에 연평균 국민 소득이 1,000만원 가량 늘어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유럽 내 일부 국가가 탄소 "감축"에 앞서 "억제-중립"을 먼저 시행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도 결국은 일자리와 정치권의 위기 의식이 맞물린 결과다.
그래서 한국도 점점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무조건 친환경"과 "선택적 친환경" 둘 가운데 어떤 전략을 취하는 게 유리한지 판단해야 한다. 일자리 감축 위기 없이 모든 게 순조롭게 전환되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못하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