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 방안은 억제, 시급한 방안은 감축, 타협적 선택은 "중립"
"현재의 인류 vs 미래의 인류". 탄소 배출을 놓고 벌어지는 관점의 갈등이다. 대부분은 미래의 인류를 고민해 현재 인류가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현재 인류에게 탄소 감축은 경제적 부담과 생활의 불편함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른바 환경의 모순이다.
세계 각 나라가 수송 부문의 탄소 문제 해결을 위해 선택하는 전략은 "억제, 중립, 감축" 가운데 하나다. 지금의 탄소 증가 상황에서 갈등은 "셋 가운데 어느 단계에 방점을 두느냐"가 쟁점이다. 환경단체들은 "억제"와 "중립"을 넘어" ‘감축" 직행을 강조하는 반면 현재 인류는 탄소 감축이 산업 성장의 억제로 연결되는 탓에 "억제-중립"에 무게 중심을 두려 한다. 물론 이마저도 나라마다 처한 상황에 따라 선택적이다. 소득이 적은 나라는 ‘억제’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인데 그나마 억제 의지에 감사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잘 먹고 잘 사는 나라의 성장 차체가 탄소 배출에 의지했기 때문이다. 저소득 국가도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은 선진국과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탄소로 성장한 국가들이 기후변화를 계기 탄소 배출을 문제 삼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된 배경이다. 현재 인류에게 닥친 현실적인 갈등인 셈이다.
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현실 정치인에게 중요한 투표권은 현재 인류에게 있을 뿐 미래 인류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유권자다. 따라서 억제, 중립, 감축의 세 가지 전략 가운데 현실 정치는 유권자가 가장 많이 원하는 탄소 전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리고 현재 인류는 미래 인류를 걱정하면서도 정작 우선하는 것은 지금의 이해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하지만 당장 모든 아이를 위해 경제적 부담과 불편함 감수를 요구하면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타협점은 억제와 감축 사이에 위치한 "중립"에 모아진다. 감축까지는 못 가도 증가를 전제한 억제는 탈피하자는 움직임이다. 어차피 인구 증가로 수송 에너지 소비 또한 증가할 수밖에 없다면 현재 80억명이 배출하는 탄소와 미래의 100억명이 배출하는 탄소의 절대량을 동일하게 유지하는 방안이다. 이를 위해 화석연료 사용량을 줄이거나 중단하고 수송 동력을 전기로 바꾸는 게 전동화의 배경이다.
유럽연합이 받아들이기로 한 이퓨얼(e-fuel), 흔히 합성연료로 불리는 에너지도 결국은 "중립" 차원에서 인정받았다. 감축을 요구하는 환경단체는 반발하지만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으려는 인류가 현재의 경제적 부담과 불편을 최소화하고 미래 인류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다. 흔히 "먹고 사는 문제"와 "죽고 사는 문제"가 충돌할 때 인류는 대승적으로 "죽고 사는 문제"를 우선했다. 탄소 배출에 따른 기후변화는 인류의 죽고 사는 문제와 직결돼 모두가 줄이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어떻게 최소화 할 것인가로 논의가 모아지면 이해 충돌이 벌어진다. 게다가 "먹고 사는" 것과 "죽고 사는" 것을 동일시하는 나라도 여전히 많다.
이런 점에서 수송 부문의 에너지 전략을 고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탄소의 중립이다. 중립만 적용해도 경제적 부담이 늘어나지만 감축보다는 부담이 낮아서다. 게다가 배터리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 생산도 여전히 탄소 배출에 의존한다. 감축을 현실적으로 가로 막는 것은 인간의 노력 부족이 아니라 다양한 욕망 본능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