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게 부풀려진 BEV 효율, ㎞/ℓ 환산식 수정
미국 EPA가 인정한 폭스바겐 BEV ID.4의 미국 내 효율은 ℓ당 160㎞에 달한다. 미국 에너지부가 전기 에너지를 휘발유로 환산한 결과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했을 때 포드 F150 BEV의 효율은 ℓ당 100㎞에 이른다. 덩치 큰 F150도 꿈의 효율이라 불리는 리터카에 등극하는 셈이다. 동일한 기준으로 기아 니로 EV는 ℓ당 164㎞의 효율로 기록돼 있다.
전기차의 휘발유 환산 효율은 미국 정부가 오랜 시간 "ℓ당 ㎞"에 익숙한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 낸 환산 표기법이다. 전기차는 "㎾h당 ㎞"로 표시하는 게 맞지만 내연기관과 BEV 유지비 비교가 쉽도록 환산 효율을 적용했다. 하지만 "ℓ당 160㎞"의 숫자는 "이게 실화냐?"라고 할 만큼 현실적이지 않다. 전기차의 휘발유 환산 수학식에 넣는 각종 계수에서 BEV가 불리한 조건은 모두 배제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탄으로 만든 전기를 사용하면 "석탄계수"를 넣고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내뿜는 배터리 탄소 계수도 개념화 할 수 있다. 하지만 BEV가 처음 등장하던 20년 전, 미국 정부는 여러 변수를 감안하지 않고 BEV 구매 유도를 위해 최대 환산법을 사용했다. 그 이유로 "㎾h당 3㎞"를 가도 BEV의 환산 효율은 "ℓ당 100㎞"를 훌쩍 뛰어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른바 BEV의 효율에 거품이 가득 찬 셈이다.
이처럼 미국 정부의 주도 면밀하지 못한 효율 환산 방식을 적극 반긴 곳은 제조사다. BEV의 고효율 환산 덕분에 상대적으로 배출가스를 많이 내뿜는 대형차 판매에 어려움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전체 배출가스 평균이 낮아지는 결과도 얻어 벌금도 면제됐다. 전체 판매한 자동차의 배출가스 총량을 계산할 때 BEV 효율이 워낙 높아 차라리 BEV는 적게 팔되 대형 내연기관을 많이 파는 게 유리했다. 덕분에 자동차 판매 수익도 늘릴 수 있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문제를 인식한 미국이 결국 제도 개선을 결정했다. BEV의 효율 환산법에 여러 현실적인 계수를 넣어 조정하기로 했다. NHTSA에 따르면 내년부터 새로운 규정이 적용되면 ID.4의 ℓ당 효율은 160㎞에서 44㎞로 무려 72%가 감소한다. F150 EV 또한 100㎞에서 28.3㎞로 71% 줄어든다. 기아 니로 EV도 ℓ당 164㎞의 효율이 46.5㎞로 71.8% 급감한다. 한 마디로 배터리 전기차의 평균 효율이 70% 가량 감소하는데 이는 곧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을 관장하는 기업평균연비제도(CAFE, Corporate Average Fuel Economy) 강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해당 기준을 맞추지 못하면 1마일당 이산화탄소 배출 벌금 14달러를 내야 한다. 이후 2025년과 2026년은 효율 기준이 한 단계 오르는데 한 마디로 평균배출가스 총량을 맞추려면 미국 내에서 BEV 판매는 늘리되 내연기관은 줄이라는 뜻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2032년 미국 내 신차 판매의 67% 이상을 전기차로 채운다는 목표 뒤에는 연비 기준 상향이 숨어 있는 구조다. 그리고 이를 다시 뜯어 보면 전기차 판매로 평균배출가스를 낮추라는 강제성이 담긴 것인데 규제로 전기차 시장을 이끌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미국의 연비 기준 상향을 보는 한국의 시선은 걱정스럽다. IRA로 전기차 보조금을 못 받는 상황에서 새로운 효율 기준을 맞추려면 오히려 내연기관 판매를 인위적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어서다. 지금까지 전기차 한 대를 팔고 내연기관 10대를 팔면서 효율 기준을 맞추었다면 내년부터 전기차 효율이 70% 가량 낮아지는 탓에 전기차 4대에 내연기관 7대를 가량으로 구성비를 맞춰야 한다. 하지만 한국산 전기차는 보조금을 렌탈이나 리스 등을 제외하면 받지 못한다. 그래서 2대 판매에 그친다면 내연기관 판매도 축소해야 효율 기준을 충족하게 된다. 물론 맞추지 못하면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 경우 전기차 마진을 포기하고 차라리 받지 못하는 보조금(7,500달러)을 제조사가 부담할 수도 있다. 내연기관차 판매 수익을 위해 전기차 손해를 감당한다는 의미다. 내야 할 벌금과 수익 등을 고려해 결정할 사안이지만 어떤 결정을 해도 한국에 유리하지는 않다. 돌파구라면 전기차의 미국 현지 생산이 유일한데 이는 그만큼 한국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어서 걱정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결국 우리의 선택은 지역별 전략이 최선이다. 보조금 정책에 따라 현지 생산, 현지 판매가 최우선이다. 대신 한국 생산 전기차는 장벽이 없는 곳을 공략할 수밖에 없다. 최대한 국내 일자리를 지키고 현지 점유율을 늘리는 것만이 돌파구라면 돌파구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