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된 공급 사슬, 경쟁과 협력 공존
배터리회사가 셀을 만든다. 당연히 셀(Cell)도 제조물인 만큼 누군가에게 판매해야 한다. 이때 최대 수요자는 전기차를 생산하는 자동차기업이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가 상충한다. 먼저 셀 제조사는 공급처를 다양화하기 마련이다. 한 곳에 집중했을 때 문제가 발생하면 손해 위험성도 함께 커지는 탓이다. 반면 완성차기업은 셀 공급사를 분산시키려 한다. 한 곳에 의존하다 공급사가 배짱을 부리거나 생산 문제가 발생하면 대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략은 모든 제조업에 적용되는 공통 사안이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합작사다.
대표적으로 GM은 LG에너지솔루션과 "얼티엄셀즈"라는 합작사를 설립하고 여러 공장을 짓거나 건설 중이다. 얼티엄셀즈에서 생산되는 "셀(cell)"은 전량 GM이 사용한다. 동시에 최근에는 삼성SDI와 합작사를 만들기로 했다. 반면 LG에너지솔루션은 GM 외에 포드와도 합작사를 설립해 유럽 포드 공장에 셀을 공급한다. 또한 포드는 SK온과도 미국에 "블루오벌SK"라는 합작사를 만들었다. 현대차도 예외는 아니다. SK온과 미국에 합작사를 만들고 안정된 공급을 확보하는가 하면 인도네시아에선 LG에너지솔루션과 함께 "HLI 그린 파워"를 설립했다. 물론 테슬라는 파나소닉과 오랜 시간 협력을 구축해 왔고 중국의 CATL 및 BYD 등도 다양한 완성차기업과 손을 맞잡고 있다.
여기서 꿈틀대는 것은 완성차기업의 셀 내재화 욕망이다. 물론 당장 완성차기업이 셀을 직접 개발하거나 제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셀 또한 오랜 시간 기술 축적이 담긴 제품인 탓이다. 게다가 대량 생산 능력을 갖춘 셀 전문 기업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금은 셀의 안정된 공급을 확보하기 위해 배터리 기업과 손잡고 합작 공장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다. 반대로 배터리 기업은 여러 완성차기업과 합작 공장을 설립함으로써 안정적인 셀 수요처를 확보하는데 치중한다. 자체적인 독립 공장을 만들어 셀을 제조할 수 있지만 배터리 또한 시간이 흐를수록 공급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만큼 합작 공장의 설립은 미래를 대비한 포석이다. 설령 해당 공장이 완성차기업으로 넘어가도 셀 제조에 필요한 소재와 전구체 공급망을 쥐고 있어 섣불리 완성차기업이 셀 제조에 뛰어들지 못한다. 당장은 서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해 시장 변화에 대처하지만 각자의 셈법은 조금씩 다르다.
이런 상황에서 둘이 경쟁하는 부문이 있다. 바로 배터리 전문 스타트업의 발굴이다. 특히 소재 부문에서 무언가 차별화된 스타트업 발굴에 혈안이 돼 있다. 배터리 기술 발전의 명제는 "작은 배터리에 전기 많이 담기"라는 에너지밀도 향상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완성차기업은 이들을 찾아내고 자본을 투입해 대량 생산으로 연결하려 한다. 이때 소재 공급망도 반드시 필요한 만큼 광물 자원에도 관심을 둔다. 현대차가 인도네시아에 전기차 공장을 설립하는 것도 배터리에 많이 사용되는 니켈이 많이 매장돼 있어서다. 추위에 강하고 화재가 없으며 작은 크기에 전기를 많이 담을 수 있는 셀을 찾기 위해 글로벌 곳곳의 연구개발 센터를 가동하는 것도 결국은 셀 내재화를 염두에 둔 전략이다.
시간이 흘러 점차 완성차기업의 셀 내재화가 이루어졌을 때 현재 배터리 기업은 공급이 축소되기 마련이다. 물론 상용차, 중장비, 나아가 공장 자동화 설비 등 산업 곳곳에 필요한 배터리를 공급하며 시장을 확대할 수 있지만 결국은 배터리 시장에 완성차기업도 들어가는 것은 시간 문제일 뿐이다. 다만, 진출 시간을 최대한 늦추도록 만드는 게 배터리기업의 저지선이다. 그리고 이때가 되면 배터리 기업의 전기차 직접 진출도 이뤄질 수 있다. 지금은 서로의 영역에서 셀의 공급사와 수요처로서 완벽한 협업이 가능하지만 연간 판매되는 신차의 70%가 배터리 전기차로 바뀌는 10~20년 후에는 협업의 "경쟁" 전환이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게다가 자율주행 지능의 고도화가 동시에 이뤄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누구나 자동차를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된다. 이 말은 차체 금형 등이 필요 없는 3D 프린터로 자동차를 만들고 지능과 배터리를 탑재하면 된다는 것이고 지금의 자동차 안전 기준 자체도 무의미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셀 제조 기업의 변신은 이미 시작됐다. 대표적으로 세계 최대 배터리 전문기업 CATL은 차체와 배터리팩을 일체화 한 섀시를 상품으로 만들어 제공하기 시작했다. 완성차기업은 물론 특수 목적용 운송 사업을 펼치는 물류 사업자에게 섀시를 적극 제안하고 있다. 뼈대를 만들어 놨으니 목적 기반 이동 수단이 필요한 사업자는 디자인 등과 기능을 넣고 사용하면 된다. 완성차기업이 제공하던 편의품목 옵션이 각 이동 사업자별로 제공되는 시대로 바꾸겠다는 의도다.
이런 흐름을 볼 때 배터리 셀 제조기업과 전기차 제조사는 결국 경쟁 관계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반드시 필요한 존재여서 먼 미래를 얘기하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경쟁 시점은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미 목적 기반 모빌리티 시장에서 직접 맞붙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