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성 중요시되는 모빌리티 시대의 핵심
대형 디스플레이가 자동차 산업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제는 센터페시아 뿐만 아니라 계기판과 조수석, 뒷좌석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을 정도다. 차내를 메우기 시작한 디스플레이는 자동차를 어떻게 바꿔놓을까?
디스플레이는 다양한 정보를 그래픽으로 표시해 사용자의 시스템 조작을 돕는다. 특히 지금 대세가 된 터치스크린은 입력의 기능까지 더하면서 디스플레이의 활용 가치를 대폭 키웠다. 사실 자동차에 터치스크린이 탑재된 지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986년 뷰익이 리비에라에 탑재한 9인치 터치스크린이 최초다. "그래픽 컨트롤 센터(Graphic Control Center)"라 불린 이 장치는 녹색으로만 그래픽을 구현하는 단색 디스플레이였다. 하지만 공조장치부터 연료효율, 라디오, 각종 게이지, 트립 컴퓨터 기능을 포함해 현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과 큰 차이 없는 수준의 기술력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이후 센터 디스플레이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의 역할을 담당하며 자동차 실내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내비게이션이 발달하자 자동차 디스플레이는 아날로그 타코메터를 몰아내고 계기판까지 영역을 넓혔다. 최근엔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디스플레이의 경계를 없앤 디자인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을 정도다. 자동차 디스플레이가 앞좌석 공간의 핵심 요소가 된 것이다.
스마트폰의 발전도 자동차 디스플레이의 영역 확장에 촉매제가 됐다. 시작은 안전 문제였다. 운전 중 스마트폰 사용으로 인한 사고가 사회적 문제로까지 떠오르자 스마트폰의 기능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들이 속속 등장했다. 차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에 스마트폰 기능을 최적화한 안드로이드 오토와 애플 카플레이가 대표적이다. 운전 중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사용이 가능해지자 이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도 자연스레 커지게 된 것이다.
요즘은 이동 중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디스플레이 트렌드를 주도하는 모양새다. 지금까지 운전자 중심의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동승자들도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동 중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의 등장과 무선 통신 기술의 발전 덕분이다. 테슬라는 이미 유튜브와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등 OTT 콘텐츠와 게임 등의 즐길 거리를 중앙 디스플레이를 통해 제공하고 있다. CES 2023에선 소니와 혼다가 공동 개발한 아필라 콘셉트를 통해 차내에서 소니의 비디오게임 콘텐츠인 플레이스테이션5와 영화감상을 즐기는 것을 시연하기도 했다.
엔터테인먼트에 초점을 맞춘 미래 자동차 디스플레이는 플래그십 제품을 중심으로 양산화가 시도되고 있다. BMW가 국내 출시한 7시리즈는 뒷좌석 천장에서 내려오는 31인치 스크린이 화제를 모았다. "BMW 시어터 스크린"이라 불리는 이 시스템은 32:9 비율의 화면으로 자동차 디스플레이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렉서스도 미니밴 LM에 초대형 화면을 뒷좌석에 탑재했다. LM의 48인치 디스플레이는 리무진에서나 볼 법한 1열과 2열 사이 격벽에 배치해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자동차가 하나의 움직이는 극장이 되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 산업에서도 디스플레이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디스플레이 강국인 한국도 엔터테인먼트를 주목적으로 하는 차세대 자동차 디스플레이 경쟁에 뛰어들었다. 최근 현대모비스는 세계 최초로 자동차용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공개했다. 대시보드 밑에서 펼쳐지는 롤러블 디스플레이는 주행 중에는 화면의 1/3만 돌출시켜 주행정보를 제공하고, 주차나 충전 시에는 모두 펼쳐져 탑승자가 영상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차내의 공간 활용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물론, 16:9 비율 30인치의 대화면으로 차세대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구축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자동차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디스플레이는 이제 자동차 인테리어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1950년대 TV의 등장으로 거주 트렌드가 TV 중심으로 바뀐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자동차의 실내 디자인 역시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발전하며 비슷한 길을 걸을 전망이다. 때문에 OTT 서비스 사업자들은 이동 중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준비하며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은 미래 자동차 산업에서 디스플레이와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에 대한 중요도를 더욱 높일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미래 자동차 시장은 누가 더 빠르고 멀리 가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화려한 디스플레이를 구현하는가, 또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는가로 경쟁할지 모를 일이다.
정현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