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대공원 레드포니 덕분에 "포니" 됐다
"포니(Pony)"라는 차명이 국내 언론에 처음 등장한 때는 1974년 9월이다. 당시 현대차는 첫 독자 승용차의 차명 선정에 국민 공모 방식을 도입했다. 차명 확정 전 7월18일부터 8월25일까지 39일 동인 차명 공모에 5만8,223명이 참여했고 3만6,500개의 이름이 등장했다. 특정 차명을 회사가 정하고 선택하는 게 아니어서 다양한 차명이 응모됐고 그 가운데 동일 차명을 고르는 방식이었다.
국민들이 추대한 차명은 무려 887명이 제출한 "아리랑"이었다. 이어 211명이 제출한 휘닉스, 202명이 선택한 무궁화가 뒤따랐다. 포니를 응모한 사람은 105명에 머물렀고 현대차의 첫 독자 차종 이름은 "아리랑"이 유력했다. 그러나 포니로 차명을 바꾼 이들은 심사위원이었다. 현대차는 차명 공모의 심사위원으로 회사 임직원이 아닌 젊은 여대생을 선정했다. 제품에 신선한 이미지를 넣기 위해 아예 젊은 심사위원을 선정했고 이들은 "아리랑", "무궁화" 등이 지나치게 사회상을 반영하고 민족적이라며 등을 돌렸다. 오히려 해외 수출까지 염두에 두려면 세계인이 쉽게 이해하는 단어가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그 결과 "포니(Pony)" 차명을 제출한 사람 중에 충남 논산에 살던 이대식 씨가 1등으로 선정돼 승용차 1대를 선물로 받았다.
그런데 "포니"가 차명으로 관심을 받게 된 배경은 차명 공모 전에 실제 있었던 붉은 조랑말의 등장이다. 1973년 5월5일 어린이대공원이 문을 열었고 그에 맞춰 국내 최초로 "라마"와 "세트랜드 포니"가 일본에서 인천항을 통해 들어왔다.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이 원산지인 세트랜드 포니는 세계에서 몸집이 가장 작은 말로 유명했다. 원래의 용도는 탄광에서 캐낸 석탄을 갱도 밖으로 운반하는데 쓰였지만 작은 몸집 덕분에 애완용 또는 승마용으로 즐겨 사용했다.
어린이대공원의 인기 동물로 방송 등에서 유명세를 타자 MBC는 아예 주말의 명화에 존 스타인백의 원작을 영화화 한 "레드 포니"를 방영했다. 말과 인간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어린이들은 물론 젊은 층에게도 많은 감동을 부여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듬해 차명 공모가 진행돼 "포니"라는 단어가 오르내리게 됐다. 만약 어린이대공원의 세틀랜드 포니가 없었다면 차명 공모에 "포니"는 아예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국 사람에게 "포니"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름이었던 탓이다.
그런데 "포니"는 국내 특허청은 물론 당시 해외에서도 이미 포드가 상표등록을 해놓은 터였다. 포니를 해외 전략 수출차종으로 삼으려 했던 현대차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고 결국 포드 측에 "포니" 상표를 넘겨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중대형차에 집중했던 포드는 소형차 의미를 담은 "포니"를 건네도 큰 손해가 없을 것으로 여겼고 현대차와 인연을 고려해 비싸지 않은 값에 상표권을 건넸다. 하지만 미국과 캐나다 등의 북미 지역은 제외됐다.
그런데 이때 제외된 북미 지역의 상표권이 분쟁의 대상으로 전환된 시점은 1986년이다. 캐나다 포드가 1987년 "에스코트(Escort)"라는 차를 내놓으며 서브 네임으로 "포니"를 사용해 포드 "에스코트 포니"를 등장시켰다. 그러자 현대차는 캐나다 포드에게 "포니" 명칭 사용 중지를 요청했다. 하지만 캐나다 포드는 "포니"는 포드가 북미에서 1980년까지 핀토에 사용했던 명칭이라며 오히려 현대차가 포니 명칭을 취소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결국 양측 합의에 따라 포드는 에스코트 뒤의 "포니"를 배제하며 일단락됐지만 그만큼 현대차 포니의 인지도가 높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일화로 회자된다.
며칠 전 현대차가 사라졌던 포니 쿠페의 설계도를 찾아내 복원에 성공했다. 이탈리아에서 열린 작은 복원 행사에 정의선 회장이 직접 참여해 주목을 끌기도 했다. 지금의 현대차를 존재하게 만든 포니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겠다는 의지다. "정주영-정몽구-정의선"으로 이어진 현대차의 역사적 헤리티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겠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정의선 회장이 "정주영 선대회장, 정세영 회장, 정몽구 명예회장 등의 노력으로 지금의 현대차가 존재한다"고 언급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사실 기업의 역사 마케팅은 그만큼 세월이 흘러야 가능한 부분이다. 이번 포니 복원은 한동안 유럽 제조사들의 헤리티지 마케팅을 부러워했던 현대차도 이제는 헤리티지를 꺼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축적됐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차원에서 기아도 경성정공 시대까지 거슬러 오른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 세월을 같이 보냈으니 말이다. 어느덧 한국차도 헤리티지 시대를 맞이할 정도로 성장했다는 점에 감회가 새롭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