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동남아 전진 기지 속속 구축
중국의 지리자동차가 동남아 BEV 시장의 교두보로 태국을 저울질 중이다. 회사 측은 부인했지만 업계에선 지리의 저가 승용 전기차와 픽업 전문 브랜드 레이다(Radar)를 태국에 진출시키는 방안이 회자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장성자동차(Great Wall)는 태국에 신규 배터리팩 조립 공장을 짓기 위해 배터리 자회사 에스볼트(SVOLT)의 3,000만 달러(한화 약 400억원) 투자를 결정했다. 동시에 동남아 시장의 주력인 픽업트럭 R&D 센터 설립도 고려 중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등을 중심으로 한 동남아 시장의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투자는 그만큼 성공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태국에 오라(ORA) 브랜드의 "굿 캣(Good Cat)" 소형 전기차를 내놓은 장성자동차는 지난해 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BEV에 올랐다. 판매대수는 미미하지만 태국 정부의 전기차 전환 의지가 강하다는 점에서 배터리도 중국 조달이 아닌 직접 생산으로 바꾸는 등 본격적인 전환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의지다. 동시에 태국 내에서 조달 가능한 부품도 늘려 일본차가 장악한 동남아 시장을 중국 전기차로 채우겠다는 야심을 불태우고 있다.
그런데 동남아는 한국도 전략적으로 노리는 시장이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짓고 6억 인구의 동남아 시장을 개척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판매는 물론 태국, 베트남 등지에 BEV를 수출해 내연기관 주력의 일본차를 조금씩 밀어내겠다는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다. 여기서 예의 주시할 점은 BEV의 경쟁 분야다. 고급 전기차로 시작된 초기 경쟁이 저가의 보급 경쟁으로 변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보급형의 중심에는 소득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새로운 산업 육성에 목 마른 동남아 국가가 떠오른다. 마치 1970~80년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한 형국인데 한국 또한 1970년대 이후 정부의 중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자동차산업이 적극 발전했고 덕분에 글로벌 생산 3위 국가에 도달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다.
동남아시아 국가도 마찬가지다. 내연기관은 기술력의 한계로 해외 완성차 기업의 조립 공장 유치에 치중했지만 BEV 분야는 다양한 자원을 앞세워 소재부터 BEV 생산 및 수출까지 가치 사슬을 직접 구축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이 과정에서 각 나라 정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차 보급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반면 한국은 고가 전기차로 초기 시장의 장악력을 높여가려 한다. 대표적으로 인도네시아에서 판매 중인 아이오닉 5 가격은 현지 기준으로 6,300~7,300만원인 반면 중국 상하이GM우링 합작사의 소형 전기차 에어EV는 2,200만원, 중국 체리자동차의 전기 SUV 티고7 등은 3,200~4,100만원의 가격대다. 보조금을 더하면 중국 전기차의 가격 경쟁력이 월등히 뛰어난 셈이다.
따라서 관건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소득 증가율이다. 한국무역협회의 "아세안 시장 인구 트렌드와 기회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2030년 아세안 국가의 총소비는 2020년 대비 약 2배 성장한다. 예상대로 간다면 중국 대비 고가인 한국 전기차에게는 기회가 된다. 그러나 같은 기간 중산층 인구도 전체의 67%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확대된다. 이들은 경제적 운용이 가능한 전기차에 시선을 주는 경향이 짙고 이때는 중국 전기차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제 막 보급형으로 확대되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에서 한국의 경쟁 상대는 중국이라는 얘기가 틀리지 않는다. 내연기관 시대를 대표했던 미국 포드의 짐 팔리 CEO도 BEV 분야의 경쟁기업은 GM이나 토요타, 현대차가 아닌 중국 기업이라는 얘기를 주저 없이 꺼내 든다. 저가의 배터리 기술을 토대로 전기차를 만드는 BYD, 지리(Geely), 장성자동차, 상하이자동차(SAIC) 등을 거론하며 포드가 이들을 상대하려면 막대한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기도 했다.
한때 일본이 많이 차지한 내연기관 시장에서 한국은 일본의 최대 경쟁자였다. 일본이 진출한 세계 곳곳에 한국이 진출해 일본차의 점유율을 빼앗으며 성장했다. 하지만 BEV로 바뀌는 시장에선 1차 경쟁자로 중국이 지목된다. 물론 중국 시각에선 자신들이 개척하는 BEV 시장에 한국차가 경쟁자로 뛰어드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각이야 어떻든 분명한 것은 중국의 전기차 굴기에 기존 내연기관 중심 글로벌 기업들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배터리 소재 공급망도 중국이 쥐고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각 나라의 BEV 생산을 주저 앉힐 수도 있다. 미국도 그 점을 우려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제정했다. 믿고 싶지 않겠지만 현실은 중국의 빠른 전기차 전환 속도를 한국이 따라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바퀴 권력이 전기로 바뀐다는 것은 단순 전환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