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정부, 전기차 활성화 대책에 기업마다 잰걸음
정부가 승용 전기차와 화물 전기차의 충전 갈등 해소에 나선 이유는 그만큼 양측의 이해 충돌강도가 점차 높아지기 때문이다. 승용 전기차 보유자는 화물 전기차가 급격히 늘면서 대부분의 급속 충전기를 점유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반면 화물 전기차 운행자는 사업용의 주행거리를 감안할 때 오히려 ‘탄소 중립’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는 점을 내세워 승용 전기차 이용자의 충전 불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둘의 갈등이 치솟자 결국 해결책을 제시했다. 승용 전기차와 화물 전기차의 이용 패턴에 따라 충전 인프라 구축의 성격을 달리하겠다는 복안이다. 주거지나 직장 등에는 완속 충전기를 확대하되 고속도로 휴게소, 국도변 주유소 등에는 급속 충전기를 집중 설치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고속도로 휴게소는 넓은 충전 전용 구역을 최대한 확보하고 국도변은 접근성이 우수한 주유소 및 LPG 충전소에도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기존 주유소 및 LPG 충전소를 전기차 충전기를 포함해 태양광, 연료전지 등 분산 에너지를 설치해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 전환하겠다는 복안도 내놨다. 주유소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하고 여기서 만들어진 전기를 직접 판매하거나 수소로 전기를 생산해 파는 것도 허용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가능하려면 기존의 각종 규제가 허물어져야 한다. 정부도 문제를 인식해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먼저 노후아파트 등 전력량이 부족한 곳에 충전기를 설치할 때는 별도의 전력 설비 증설 없이 해당 건물의 전력 사용량이 적은 시간대에 충전기 스스로 필요한 전력량의 조절이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충전기 설치가 어렵거나 충전 수요가 급증한 곳에는 우선적으로 이동형 충전기를 보급하고 택배 차고지에는 무선 충전기를 적극 확대해 상차 시간(30∼60분)에 충전이 이루어지도록 할 계획이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부족한 전력량과 주차면 공급이다. 그래서 공동 주택에 설치되는 충전기의 20%는 급속으로 구축하기로 했고 고속도로 휴게소 등에는 집중형 충전소(600kW 이상) 설치가 쉽도록 전기인입설비 용량 확대를 검토하기로 했다. 또한 충전시설 전기설비를 원격으로 감시, 제어하는 경우에는 전기안전관리자 선임기준을 합리적으로 개선(60개소→120개소당 1명)하는 방안도 대책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이번 대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방안은 배터리 안전성이다. 한 마디로 안전한 배터리만 시장에 출시토록 안전성 인증 및 사후검사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계획이다. 배터리 식별번호를 자동차등록원부에 기재하고 핵심 소프트웨어인 BMS(Battery Management System) 관리를 강화하는 게 골자다. 시험 항목에 사고 재현시험을 추가하고 배터리 이상 감지, 경고, 화재발생 시 경보기능 등도 넣기로 했다. 이들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을 때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확정했다. 충전시설에서 전기차 화재의 사전 차단 방안은 자동차에 부착된 배터리를 충전할 때 전압, 전류, 온도 등의 정보가 충전기를 통해 제공될 수 있느냐다. 이 경우 이상이 감지되고 화재가 발생하면 즉시 전력이 차단되고 119안전센터 등에 전파된다.
그렇다보니 완성차 및 배터리 업계의 시선이 화재 예방으로 몰리고 있다. 그 결과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리튬인산철 소재가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충전 인프라가 촘촘해질수록 주행거리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는 반면 화재 위험에 시선을 두려는 경향은 강해질 수 있어서다. 비록 충전기와 배터리 간 통신 등으로 충전 때 화재는 예방할 수 있다 해도 운행 중 발생하는 열폭주 화재는 에너지 밀도가 낮을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SK온 등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초반에 외면했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개발에 적극 뛰어든 것도 삼원계 소재의 높은 화재 위험성 및 비싼 가격이라는 사실은 충전 인프라가 확충될수록 삼원계 배터리 수요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무엇보다 전기차 이용자의 안전 및 편의성 향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여기서 편의는 충전의 편리함과 화재의 안전함이다. 그런데 배터리 안전성은 에너지 밀도가 낮을수록 유리한 측면이 있다. 화재 위험성을 낮출 때 보조금을 주는 방안이 배터리 소재 업계의 주력 판도를 바꿔 놓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용자는 크게 관심이 없어도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