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기차 맞서 수소 및 이퓨얼 등 키워야
르노의 장 도미니크 세나드 회장이 EV 부문의 "중국 폭풍(Chinese Storm)"을 언급했다. BEV를 앞세운 중국의 유럽 시장 공략이 "폭풍"에 비유될 만큼 공격적이라는 의미다. 특히 중국의 경우 전기차 생산을 위한 모든 가치사슬이 완벽하게 구축돼 있어 유럽 내 제조사의 BEV 대응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우려한다. 배터리에 필요한 광물의 채취, 가공, 혼합, 셀 제조의 모든 공급망이 중국산 BEV의 가격 경쟁력 확보로 연결된다는 뜻이다.
실제 세나드 회장은 "중국 폭풍"의 정의에 대해 공급망과 가격을 언급했다. 유럽으로 수입되는 중국 BEV가 거센 물결을 일으키는 배경은 그 어떤 외부 의존도 없이 100% 자체 공급이 가능한 중국 내 BEV 가치 사슬이 가격의 안정성을 만들고, 이렇게 억제된 원가변동이 BEV의 소비자 가격으로 연결돼 유럽 내에서 반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흐름이 지속된다면 유럽에 생산 공장을 짓는 중국 기업들의 유럽 내 BEV 지배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음을 우려한다. 유럽 내 전통적인 자동차기업으로 분류되는 르노, 벤츠, BMW, 폭스바겐 등도 전기차를 만들지만 필요한 핵심 부품의 소재는 중국에 의존하는 것이 절대적 위기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만약 중국이 의도적으로 소재 공급을 줄이거나 배제하면 유럽 내 완성차기업은 전기차 생산에 차질이 불가피하고 가격도 영향을 받는다. 설령 배터리 셀 공급사가 한국에 기반을 두었다 해도 한국 배터리 또한 중국의 1차 가공 소재 사용 비중이 높아 중국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쉽지 않음을 지목한다.
해외 시장을 겨냥한 중국의 BEV 확대 전략은 이미 활발히 진행 중이다. 그중 우선 공략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 동남아시아다. 중국의 장성자동차(Great Wall)는 내년부터 소형 BEV 오라 굿 캣(Ora Good Cat)을 태국에서 생산할 계획이며 BYD 또한 내년부터 연간 15만대의 BEV를 태국에서 생산, 동남아 지역에 판매한다. 이외 장안자동차와 광저우자동차도 동남아 지역 진출 계획을 확정하고 현지 공장 설립을 준비 중이다. 일본 내연기관 자동차가 장악한 동남아 지역을 BEV 선도 시장으로 바꾸면서 중국 브랜드 차종을 대거 투입하는 식이다. 물론 각 나라 정부 또한 BEV 전환으로 만들어질 새로운 산업 생태계 및 일자리, 탄소 배출권 확보를 반긴다. 한국이 인도네시아를 거점으로 삼을 때 중국은 태국을 중심으로 전체 동남아 권역을 BEV 타깃으로 삼는 셈이다.
동남아 지역을 공략하려는 또 하나의 이유는 소득이다. 국민 소득이 높지 않아 이들 지역에선 가격이 저렴한 BEV 투입이 필요하고 이때 중국 내 LFP 배터리 공급망이 탄탄하게 뒤를 받친다. 에너지밀도가 떨어진다는 단점은 셀의 적재 방식 및 다양한 소재 배합 등을 통해 극복하려 한다. 이를 위해 CATL은 LFP에 망간, 아연, 알루미늄 등을 소재로 배합한 새로운 배터리를 개발하기도 했다. LFP 대비 가격 인상은 최대한 억제하되 전기의 저장량은 늘려 대응하는 식이다. 동시에 새로운 배터리는 겨울철에도 성능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인 소재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영하 20도에서 기존 대비 충전 효율이 50%, 상온에선 43%를 높일 수 있는 배터리를 올해 내에 양산한다는 목표를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일부에선 LFP 배터리의 재활용 및 소재 회수 가치가 떨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환경을 위해 BEV를 투입하는데 정작 BEV 사용 후 남는 배터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오히려 환경 폐기물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LFP의 약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중국이 당장 주목하는 것은 배출규제의 강화다. 세계 모든 나라에서 화석연료 사용을 단순 억제가 아닌 강제 규정으로 도입하면서 BEV 제조사는 가격 경쟁력 확보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이때 선택은 LFP로 모아진다는 자신감이다. 게다가 환경 폐기물 논란은 소재 추출 기술의 발전을 통해 비용을 낮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글로벌 BEV 시장은 배터리의 소재 영역에 따라 시장이 구분된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프리미엄 BEV는 한국이 주력하는 NCM 계열의 배터리가 탑재되고 대중적인 보급형 BEV에는 중국이 집중하는 LFP 탑재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프리미엄 BEV와 보급형 BEV 틈새를 메워줄 중간급 배터리의 등장이 시작되고 있다. 이들 모든 공급망을 가지고 다양한 가격대의 BEV로 현지화 전략을 펼치는 중국 기업들의 기세가 무섭다는 게 바로 르노 회장이 언급한 "중국 폭풍"이다. 그리고 포드의 짐 팔리 CEO는 이를 두고 "포드의 BEV 경쟁자는 GM이 아니라 중국 기업"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 같은 중국의 BEV 확산을 막기 위해 르노 회장은 탄소 중립 연료인 이퓨얼, 그리고 수소 등을 언급했다. 유럽 또한 배터리 중심의 BEV가 확산되겠지만 궁극적으로 이퓨얼 활성화로 내연기관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수소연료전지 등도 확대해야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 여러 다양한 친환경 동력원이 복합적으로 운용돼야 탄소중립이 가능하다고 내다본 결과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한국은 이미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NCM은 물론 LFP 배터리 진출, 그리고 수소에도 매진하고 있어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전동화 전환의 속도다. 얼마나 빨리 전환할 수 있는가, 이제는 그게 중요한 항목으로 떠오른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