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정년 연장과 전기차, 그리고 방관 정치

입력 2023년09월01일 00시00분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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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돌하는 "사람의 미래 vs 산업의 미래"

 노조는 "정년을 연장해 달라"고 한다. 반면 기업은 "미래를 위해 그럴 수 없다"고 맞선다. 그리고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 일자리는 그만큼 기회가 줄어든다. 이 과정을 보는 정부는 기업 내부의 문제라며 애써 고개를 돌린다. 정년을 연장해 달라는 사람이나 반대하는 사람 모두 국민에 포함되는 만큼 총선을 앞두고 굳이 표심을 멀리할 이유는 없어서다. 그 사이에서 기업은 진퇴양난이다. 정년 연장이 실질적으로 어려운 진짜 이유가 있는 탓이다. 

 중심에는 전동화가 있다. 내연기관 제조사의 전동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항목이다. 배출 규제를 맞추지 못하면 물건을 팔 수 없고 그렇다고 내연기관을 많이 팔면 자칫 이익을 고스란히 벌금으로 뱉어낸다. 그래서 서둘러 전동화를 진행하는 중이다. 그런데 전동화로 통칭되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처럼 높은 진입 장벽이 없다. 게다가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른 만큼 세계 모든 국가 및 기업들이 동시에 뛰어드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이 큰 나라들은 전기차 장벽 세우기에 여념이 없다. 내연기관이 자유무역의 상징처럼 여겨졌다면 전기차는 미래 산업이어서 보호의 대상으로 삼는다. 미국의 IRA, 프랑스의 탄소 배출량 보조금 차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에게 전기차는 자동차산업의 연장선인 만큼 주도권을 내놓지 않는 게 철저한 목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곳은 자동차 수출이 많은 나라 또는 기업이다. 그 중에서도 생산은 많지만 내수 시장이 작은 곳은 치명타를 맞는다. 대표적인 나라가 한국이다. 일본도 생산이 많지만 그나마 내수 시장이 일부 충격은 흡수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연간 180만대로 작은 시장인데 생산은 380만대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유럽 등이 전기차 산업 보호를 위해 자꾸 문을 걸어 잠그면 결국 돌파구는 현지 생산이다. 배터리 기업들의 해외 진출이 잇따른 배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완성차로서 전기차는 생산 공정이 단순하다는 게 아픔(?)이다. 내연기관 한 대를 만드는 것과 비교하면 인력은 절반 이하면 충분하다. 이 점을 고려해 현대차도 2030년 글로벌 323만대의 전기차 생산 계획을 세울 때 국내 생산은 144만대로 한정했다. 주요 시장에 생기는 보호 장벽을 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내 전기차 생산에 필요한 인력의 자연 감축을 고려한 결정이다. 그러니 정년 연장은 생산 현장의 과잉 인력 투입과 같다. 그리고 과잉 인력은 전기차 가격 상승을 일으켜 시장 내 제품 경쟁력 약화로 연결된다. 한 마디로 미래 없이 함께 쇠락하자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고민은 비단 한국 뿐만이 아니다. 미국 자동차노조 UAW는 최근 임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 정년 연장까지는 아니지만 어차피 전기차로 전환되면 일자리가 줄어 근로자의 설 자리가 없어진다는 점을 주목했다. 따라서 있을 때 최대한 임금을 많이 받자는 취지다. 하지만 당장 전기차 가격 인하로 규제의 칼날을 피해야 하는 기업은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때 일부 국가의 정치권은 차라리 규제를 완화해 내연기관을 최대한 유지하는 방안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국제 사회의 탄소 중립 의지는 이들을 고립시킬 뿐이다. 오히려 느슨한 배출 규제가 기업의 미래 경쟁력을 조금씩 갉아먹을 수도 있다. 글로벌 시장에선 규제의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탓이다. 미국이 다시 내연기관을 선언하면 당장 미국 자동차 기업은 반색할 지 몰라도 이들 기업의 해외 수출은 점점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정년 연장은 단순히 노사 문제가 아니다. 이는 자동차 산업 전환 시대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지만 뾰족한 묘수도 없다. 특히 자동차 생산이 많은 산업 강국일수록 문제 해결은 더욱 복잡하다. 그래서 정부와 정치권에 "SOS"를 던지면 이들도 슬쩍 시선을 외면한다. 모두 미래 산업 전환을 독려하며 국가의 앞날을 대비하자고 얘기하지만 정작 머리 아픈 문제에선 한 걸음 뒤로 물러난다. 

 사실 정년 연장 논란은 단순히 전기차 전환 시대에서 줄어드는 인력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화두다. 늘어나는 수명, 줄어드는 청년, 로봇이 대신하는 일자리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서다. 따라서 정년 연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결론을 내야 하는 것이지 기업의 노사 대립이 해결할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꺼내는 순간 극심한 사회적 논란과 갈등이 일어날 수 있어서다. 정년 연장 요구는 그래서 파업의 이유가 되지 못한다. 정년 연장 목소리는 정부와 정치권을 향하는 게 올바르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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