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르노의 '암페어(Ampere)' 실험을 주목하는 이유

입력 2023년09월03일 00시00분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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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노코리아의 역할에 주목하다

 1775년 태어난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드레 마리 암페어는 이른바 "앙페르 회로 법칙"을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훗날 실제로 흐르는 전기의 양, 즉 전류량을 뜻하는 "암페어(A)"가 그의 이름에서 따온 용어다. 그만큼 전기 역사에서 암페어의 역할이 컸고 프랑스에선 여전히 그를 위대한 과학자로 추앙한다. 

 프랑스 자동차회사 르노가 새로 설립하는 전기차기업의 사명을 "암페어(Ampere)"로 정한 데는 앙드레 마리의 위대함과 테슬라를 염두에 둔 전략으로 해석된다. 미국의 일론 머스크가 교류 전송 방식으로 전기를 대중화시킨 유럽 출신 전기과학자 테슬라를 기업명에 활용한 점을 참고했다는 것이다. 르노 또한 이미 대중화 된 전기 용어에서 기업명을 물색했고 이때 떠올린 전기 과학자가 앙드레 마리 암페어다. 1946년 국제전기협의회에서 전류의 단위로 "암페어"라는 용어를 공식화했으니 "암페어"는 앞으로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프랑스의 자존심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르노의 지배 하에 존재할 신생 전기차 기업 암페어의 역할이다. 암페어는 기본적으로 르노 브랜드로 판매될 전기차 개발에 집중한다. 따라서 전체 직원 1만명의 30%가 전기차 구동 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구성된다. 하지만 암페어 브랜드의 제품도 내놓는다. 쉽게 보면 르노는 내연기관과 HEV의 개발, 생산, 판매를 맡고 암페어는 별도 BEV를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 물론 때로는 르노 브랜드의 BEV 위탁 개발 및 생산도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을 따르면 결국 HEV는 르노, BEV는 암페어로 양분되고 2035년 HEV 판매마저 금지되면 르노와 암페어 모두 BEV 기업으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르노 또한 HEV 비중을 축소할 시점이 되면 BEV 제품을 늘릴 수밖에 없어서다. 이때 르노와 암페어의 브랜드 역할 분담도 이루어지는데 르노는 보급형, 암페어는 고급형이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내연기관 고성능 브랜드인 알피느의 전기차를 암페어가 만들어주는 것도 결국은 암페어의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르노가 전기차에 있어 별도 법인 암페어를 설립키로 한 진짜 배경은 바로 "스타트업 문화" 때문이다. 전기차 관련 배터리와 소트트웨어 기술의 진화 속도를 따라가려면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의 전기차 스타트업처럼 빠른 속도 적응이 필요하다는 것. 기존 르노 내부에선 여전히 내연기관 유지를 원하는 목소리가 크고 이 점은 전환을 따라가는 속도를 늦춰 오히려 미래 성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로 포드 또한 지난해 "모델e"라는 전기차 전문 기업을 설립해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투트랙 전략을 선택했다. 기본적으로 내연기관과 전기차는 사용하는 에너지가 다른 것 같지만 기본 구조부터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배터리 등의 핵심 부품이 전혀 달라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도 내연기관에서 아예 멀어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최근 폭스바겐그룹이 소프트웨어 전문기업 "캐리어드"를 만든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 같은 르노그룹의 내연기관과 전기차 투트랙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한국 내 관심은 르노코리아로 쏠린다. 내연기관과 HEV를 생산, 공급, 판매하는 르노코리아도 현재 관점에선 HEV에 주력할 수밖에 없어서다. 하지만 한국이 배터리 강국이라는 점에서 르노코리아 또한 암페어에 버금가는 역할을 기대해 볼 수도 있다. 실제 르노코리아는 BEV 개발을 계획하고 국내 여러 배터리 기업들을 접촉해 공급을 요청했다. 그러나 배터리기업의 공급이 여의치 않다. 현재 생산하는 물량만으로도 다른 완성차 제조사에 공급하기 벅찬 탓이다. 그렇다고 국내에 추가로 공장을 지어 배터리 생산량을 늘리기도 여의치 않다. 유럽과 미국 등이 앞으로 배터리 장벽을 세울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게다가 프랑스는 유럽판 IRA로 불리는 탄소 부과금을 꺼내들었다. 르노코리아가 한국에서 BEV를 생산, 프랑스를 포함해 르노 유럽에 수출하려 해도 장벽에 막힐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기차로 전환될수록 국내 완성차 생산은 점점 줄어들기 마련이다. 각 나라가 시장을 걸어 잠그고 전기차 산업을 육성하려는 욕망이 너무 강해서다. 그럼에도 르노코리아가 암페어의 역할을 일정 부분 감당하려면 배터리 수급 문제는 해결돼야 한다. 공급사들이 함께 한국의 미래 전기차 산업을 위해 손을 맞잡을 필요성이 높다는 뜻이다. 국가적 관점에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공장이 어디에 있느냐이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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