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제조사로 한 걸음 이동
LG전자는 자동차를 만들 것인가 아닌가. 2023 IAA에서 발표에 나선 조주완 사장의 행간을 읽어 보면 오히려 만들지 않는 게 이상할 따름이다. 현장 발표에서 조 사장은 4개국 3만1,000명에게 자동차의 정의를 물어봤다고 했다. 그 결과 72%는 자동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즐겁다 했고 43%는 의미 있는 사적 공간이라는 답을 내놨다고 말했다. 그래서 LG전자는 자동차를 다시 정의한다고 했다. 전자 기업이 "자동차", 그 중에서도 실내 공간을 주목하며 모빌리티 시장에 접근하겠다는 의도다.
표면적으로는 자동차 부문 전장사업 확대지만 LG전자의 행보는 점차 전기 완성차 제조에 가까워지는 중이다. 실제 조 사장은 이날 가정과 사무실을 연결하는 이동 전자 기기로 전기차의 역할을 주목했다. 다양한 가전을 사용하는 집과 사무실, 그리고 이들을 연결하는 이동 수단의 전동화는 두 공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이동 전자 제품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제조에 직접 나설 가능성을 높인 또 다른 배경은 IAA 발표 전략에서 엿보인다. LG전자는 미디어데이 첫날 처음 발표 시간을 잡았다. 행사를 후원하며 얻어 낸 시간이다. 왜 첫 시간인지 생각해 보면 답은 분명하다. 모빌리티쇼라는 점에서 대부분의 시선은 완성차로 쏠린다. 첫 시간이 아니었다면 한국 외에 글로벌 미디어의 관심은 별로 없다. 플로어에 마련된 좌석의 빈 공간이 많았지만 그나마 첫 시간이어서 나름 자리를 채웠던 셈이다.
완성차 기업이 주로 차지했던 첫 시간을 LG전자가 확보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독일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LG전자로선 전기차 기업 이미지를 만들고 주최측은 이들의 후원을 받아 이뤄진 것 같지만 벤츠, BMW, 폭스바겐그룹 등이 첫 시간 발표를 하지 못한 것은 완성차 중심의 모터쇼에서 거의 없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만큼 LG전자의 전기 완성차 진입 전략이 조금씩 드러나는 셈이다. 그래서 이날 발표는 LG전자가 글로벌 자동차 제조사에게 일종의 전기 완성차 진입을 예고한 선전포고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LG전자의 전기차 시장 진출을 놓고 일부에선 기존 완성차 업체의 입김(?)을 고려해 쉽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시장에 진입하는 순간 현대차그룹을 비롯해 다양한 완성차 기업이 LG의 여러 자동차 부품을 공급받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한편에선 LG전자를 포함해 계열사가 제공하는 부품을 받지 않으면 아예 완성차 제조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언급한다. 게다가 대체 공급처도 마땅하지 않고 LG 부품들의 제품력이 높아 영향력을 미치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점도 주목한다. 아울러 공급 물량 측면에서도 이제는 현대차가 공급사에 자칫 끌려갈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한다. 배터리, 전기모터, 디스플레이 패널, 내장재 등에서 공급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LG전자가 전기차를 만들어 시장에 진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조 사장이 내년 CES에 공개할 모빌리티를 기대해도 좋다고 말한 점을 두고서는 아예 양산을 전제로 CES에 일종의 컨셉트를 공개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그래서 추가적인 관심은 LG전자가 전기차 시장에 진입한다면 스티어링 휠과 페달이 있는 전기차를 만들 것이냐다. 다시 말해 당장 직접적인 경쟁이 가능한 전기차에 초점을 두느냐에 몰려 있다. 그러나 시작은 스티어링 휠과 페달이 있어도 선택적으로 사용 가능한 레벨3 단계의 진출이 최상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공간에서 차별화를 하지 못하면 자칫 전통적 개념의 완성차 기업에게 밀릴 수 있어서다. 특히 구동 측면에선 완성차 기업의 기계적 기술은 여전히 강하다. 따라서 이 점을 뛰어 넘으려면 공간 및 지능의 차별화가 필요하고 이때는 최소 자동차에게 운전을 일부 맡길 수 있는 레벨3 수준의 지능 고도화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LG전자가 전기 완성차 시장에 진입할 것이라고 공식 선언한 바는 없다. 하지만 전기차에 필요한 부품 사업을 견고하게 만들고 그 위에 전기차를 살포시 얹어 놓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자 진출에 따른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다. 실제 내연기관 산업도 그렇게 발전해 왔다. 그래서 LG전자가 전기차를 만들 것이냐 아니냐의 논란은 점차 무의미해지는 것 같다. 이제는 만드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상황이 조성되고 있으니 말이다.
뮌헨=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