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유니버설 모빌리티의 산실, 영국 LEVC

입력 2023년09월10일 00시00분 권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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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초 장애인/비장애인 겸용 자동차 생산, 영국 코벤트리

 영국 버밍햄 공항에서 20분, 런던 유스턴 역에서 출발하면 1시간 조금 넘는 거리에 코벤트리가 있다. 코벤트리는 영국 자동차산업의 발상지로 불리는 곳이다. 자동차 디자인으로 유명한 코벤트리 대학이 있고 재규어랜드로버는 물론 롤스로이스, 애스턴마틴 등의 공장이 몰려 있다. 그런데 이 곳에 세계 최초로 유니버설 모빌리티를 생산하는 작은 제조사가 있다. 바로 런던전기택시컴퍼니(London Electric Vehicle Company), 일명 LEVC라 불리는 기업이다. 

 우리에게 LEVC는 회사 이름보다 런던 블랙캡으로 더 유명하다. 런던 시대를 활보하는 커다랗고 검은 택시가 바로 LEVC의 TX5 모델이다. "블랙캡(Black Cap)"이라는 이름 또한 검은색 택시라는 의미에서 붙여졌고 이층버스와 함께 영국 도로의 상징물로 여겨진다. 영화 킹스맨과 해리포터에도 등장해 한국에선 영국이 주무대인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차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LEVC는 꽤 오래 된 기업이다. 1908년 런던의 택시 판매상인 만(Mann)과 톰 오버튼(Tom Overton)이 프랑스와 독일에서 택시용 자동차를 수입, 운행하며 시작됐다. 이후 런던은 금세 이들이 운영하는 택시로 바뀌었다. 이렇게 택시사업으로 성공을 거머쥔 이들은 코벤트리 안스티(Ansty)에 위치한 오스틴자동차에 택시 전용 제품 개발을 의뢰했다. 이후 오스틴자동차는 자신들이 개발한 "FX" 샤시의 3세대를 택시용으로 제공했다. 이때 출시된 차가 최초의 블랙캡으로 명명된 FX3다. 저렴한 가격에 택시로 오래 견딜 만큼 내구성이 좋아 단숨에 영국 전역의 택시 전용 제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1958년에는 FX4로 제품이 변경됐다. FX4는 대표적인 영국의 명물로 자리매김하며 작고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즉위 25주년을 기념해 특별판이 선물되기도 했다. 이후 마네스 브론즈 홀딩스가 택시 회사와 제조사를 모두 인수해 런던 택시 인터내셔널이 됐는데 이때 닛산 디젤 엔진이 도입되고 세계 최초로 휠체어 램프가 차에 내장됐다. 이른바 장애인 및 비장애인 겸용 자동차의 탄생이었던 셈이다. 

 1997년 런던택시는 40년 만에 새로운 제품을 내놨다. 이전 FX 샤시를 벗어나 새롭게 뼈대를 만들고 이 차체에 택시를 의미하는 "TX"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2002년 포드 엔진을 탑재한 TX2가 등장했고 2006년에는 중국 지리홀딩스그룹과 합작으로 영국 이외 중국 내에도 생산 시설을 구축했다. 이후 제품은 TX4로 바뀌며 한 단계 진화했고 회사 이름도 지금의 LEVC로 확정됐다. 2013년 지리그룹은 LEVC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친환경 전기차 기반의 레인지 익스텐더 파워트레인과 디자인 변경, 그리고 해외 수출용 제품을 개발해 TX5로 명명하고 글로벌 시장을 두드리기 시작해 독일과 프랑스는 물론 터키와 한국, 일본 등에 제품을 수출했다. 

 무엇보다 LEVC TX5가 주목받는 이유는 클래식한 디자인과 유니버설 모빌리티라는 점이다. 최근 일본 토요타가 자체 개발해 일본 내에서 판매하는 저팬 유니버설 모빌리티 디자인 택시(일명 UD택시) 또한 TX5 제품을 벤치마킹한 것이고 현대차그룹도 TX 내부의 장애인 편의 기능 등을 참고해 향후 내놓을 PBV에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넓은 자체, 휠체어 램프는 모든 제품에 기본 적용
 -장애인 및 비장애인 이동 차별 없앤 유니버설 모빌리티

 코벤트리 안스티에 자리한 LEVC 공장은 그리 큰 규모는 아니다. 연간 최대 생산대수는 2만대에 머문다. 하지만 택시인 TX5 외에 자가용 버전인 TX, 그리고 캠핑카와 화물밴(VN5) 등이 주문에 따라 생산되는 시스템이어서 수제작 과정이 적지 않다. 그만큼 생산은 핸드 메이드 방식이 일부 적용된다. 게다가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 기반의 REEV(Range Extender Electric Vehicle)여서 더욱 신중한 과정이 필요하다. 구동은 100% 전기로 하되 31㎾ 용량의 배터리 충전 전력이 모두 소진되면 1.5ℓ 휘발유 발전기가 전기를 생산해 전기로 구동되는 방식이다. 내연기관이 있지만 바퀴 구동에 관여하지 않아 기름 소비는 덩치에 비해 많지 않다. 물론 충전기가 나타나면 다시 콘센트를 통해 외부 충전하면 된다. 목적지가 다양한 택시의 이동 특성을 고려해 적용된 파워트레인이다. 

 영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TX 샤시는 알루미늄이 대부분 사용된다. 배터리 탑재에 따른 중량 부담을 덜어내기 위한 선택이다. 그 결과 WLTP 기준으로 TX의 영국 내 효율은 매우 높다. 하지만 회사 관계자는 "배터리 전기를 모두 쓰고 휘발유 발전기로 기름을 모두 소진했을 때의 효율 기준이지만 통상적으로 택시 운행 때는 대부분 전기로만 충전해서 다니고 있어 기름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말한다. 한 마디로 휘발유 발전기는 만약을 대비한 예비 항목인 셈이다. 

 다른 대형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하는 JIT(Just In Time) 방식도 쓰지 않는다. 연간 생산량이 적어 필요한 부품은 공장 내에 쌓아두고 소비자 요구에 따라 만든다. 게다가 최근에는 택시가 아닌 프리미엄 개인 자가용을 원하는 소비자가 많아 고급화에 매진하고 있다. 프리미엄 개조 회사와 손잡고 개인 전용 고급 슈퍼 드리븐 자동차를 제공하는 사업을 확대하는 것. 운전석과 승차석의 격벽이 있어 탑승자의 사생활 보호가 철저히 유지되는 데다 휠체어 램프도 기본 적용된 만큼 다용도가 가능해서다. 회사 관계자는 "LEVC는 단순한 택시용 자동차를 만드는 곳이 아니라 이제는 기능성이 많은 고급 자가용을 제조하는 기업"이라며 "오랜 시간 축적된 탑승자 중심의 노하우가 프리미엄 시장을 만들어내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LEVC는 향후 유니버설 모빌리티를 기반으로 운전자를 둔 개인 전용 고급 자가용, 그리고 전동화 기반의 고급 전기 캠핑카 등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누구나 탑승 가능한 택시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사용 가능한 프리미엄 유니버설 모빌리티로 전환되는 중이다. 이를 통해 세계 최초로 개척한 유니버설 모빌리티 시장의 진화를 이끌어가는 셈이다. 

 코벤트리(영국)=권용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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