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화 전환 속도, 높일까 늦출까
유럽연합이 내연기관의 강력한 저항에 한발 물러났다.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각 나라 장관들로 구성된 유럽 이사회가 역사상 가장 까다롭게 설정된 내연기관의 유로7 배출 규제 완화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먼저 승용차와 밴(VAN)은 현재 적용 중인 ‘유로6’ 시험 조건과 배기가스 배출 제한을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자동차를 많이 생산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8개국의 요청 사항을 반영한 셈이다. 하지만 타이어 마모 때 발생하는 분진과 브레이크 마찰로 생겨나는 미세 물질의 규제는 새롭게 수용키로 했다.
무엇보다 내연기관 제조사가 완화를 요구한 것은 배출가스 시험 조건이다. 실제 도로주행 시험에서 질소산화물 배출량을 ㎞당 60㎎ 이하로 줄이는 데는 동의하지만 시험 때 주행 온도를 섭씨 35℃에서 45℃로 높이고 해발 고도를 1,600M에서 1,800M로 올리는 것에 대한 부담이다. 질소산화물은 공기의 온도가 높을수록, 그리고 공기 중의 산소 농도가 희박해질수록 배출이 더 많아지는 탓이다. 2035년부터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는 유효하지만 이전까지 내연기관 비중은 빨리 줄이지 않겠다는 의도다.
그런데 EU의 배출규제 완화를 바라보는 시선은 유럽 내 회원국 사이에서도 갈등을 일으킨다. 내연기관 생산 비중이 높은 프랑스, 이탈리아, 체코, 독일 등은 점진적 전환에 비중을 두는 반면 전기차로 앞장 서 보급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는 급진적 전환을 원한다. 이들에게 전동화는 새로운 산업이자 기회로 여겨지는 탓이다.
하지만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나라들이 공통적으로 우려하는 점도 있다. 바로 중국의 전기차 공략이다. 특히 가격 측면에서 중국산 전기차의 경쟁력은 현실적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다. 나름 유럽산 전기차의 제품 기술력을 앞세우려 하지만 내연기관과 달리 기술 측면에서 전기차는 차별화가 쉽지 않다.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전기차의 기술이라는 것 자체가 1회 충전 주행거리와 저온 조건에서 배터리 성능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술 측면에서 중국 전기차의 제품력은 하루가 다르게 상승하는 중이다.
우려되는 것은 중국 전기차에 대한 유럽과 미국의 견제가 한국산 전기차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다. 중국 진출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각종 무역 장벽이 생겨나는데 이때 대부분의 조건은 생산지를 기준 삼는다. 다시 말해 유럽연합이 장벽을 세우면 한국산도 진입에 어려움이 생겨 국내 생산 물량의 팔 곳이 줄어든다. 이때 돌파구란 결국 현지 생산이 유일하고 그럴수록 국내 일자리 감소가 뒤따른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두고 각자의 시각에 따라 해석은 분분하다. 전동화 속도 조절론이 떠오르는 만큼 내연기관 시대의 지속을 언급하는가 하면 그래도 전동화는 가야 할 방향이기에 꾸준히 밀어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다.
그래서 전동화 속도를 바라보는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먼저 내연기관 규제 완화 여부를 떠나 속도를 높이려는 국가다. 대표적으로 중국을 비롯해 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다. 중국은 전기차의 선두 국가로 올라서려 하고 동남아시아는 풍부한 배터리 소재를 기반으로 내연기관 시대를 전기차로 바꾸려 한다. 한 마디로 전기차를 통해 자동차 강국에 진입하려는 욕망이 거세다. 반면 140년 이상 내연기관 기반의 자동차 강국을 유지해왔던 미국과 유럽연합 등은 초반 전기차로의 빠른 전환을 선택했지만 현실적인 이유 탓에 점진적 전환으로 돌아서는 분위기다. 전환 속도를 높일수록 오히려 속도전에 매진하는 중국 등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리고 일본처럼 처음부터 전환 대비는 하되 속도보다 상황을 지켜본 국가는 느긋하다.
사실 지난해까지 한국의 전환 전략은 매우 성공적으로 평가받았다. 그런데 올해는 오히려 HEV에 매진해왔던 일본의 중간 전략이 빛을 보는 상황이다. 그러나 상황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궁극적으로 바퀴의 구동 에너지가 전기로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또한 기후변화 영향이 현실에서 넓어질수록 전동화 목소리도 자꾸 커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국의 전동화 속도를 애써 늦출 필요는 없다. 전기차는 초창기여서 수출이 어렵다면 내수 시장에서 일정 규모를 키우면 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정책적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보조금을 더 준다고 구매가 되살아날 것으로 판단하면 오산이다. 결국 운행 과정의 혜택이 많아져야 한다는 뜻이고 이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전기차는 운행에서 탄소 배출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