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부, 2024년부터 100대 중 22대는 전기차 강제
전기차 천국이라 불리는 노르웨이에도 없었던 세계 최초 전기차 판매 의무화가 도입된다. 바로 영국 이야기다. 영국 정부는 2024년부터 모든 제조 및 수입 업체의 영국 내 판매 자동차의 22%를 전기차로 강제한다. 내연기관차 배출 규제 강화와 별개로 아예 판매를 강제해 전기차 보급을 늘리겠다는 심산이다. 심지어 영국은 전기차 보조금도 아예 없애버렸다.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를 선언했고 유럽연합이 내연기관 배출 규제 완화를 합의하자 이 틈을 파고 들어 영국을 유럽 내 전기차 선두 주자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그렇다면 영국은 왜 전기차 판매를 강제했을까? 속을 들여다보면 영국 정부의 전기차 전략이 읽힌다. 최근 수낵 총리는 내연기관 판매 금지를 2030년에서 2035년으로 5년 늦추겠다고 선언했다. 당초 유럽연합이 2035년을 내연기관 판매 금지 시점으로 정한 것과 달리 영국은 그보다 5년 앞서 금지를 표명한 것에서 조금 물러난 셈이다. 이를 두고 영국도 전기차 전환 속도의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는 해석이 쏟아졌다.
그러나 영국이 놓지 않으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영국은 증기기관을 통해 산업혁명을 이룬 국가였지만 마차 산업의 저항에 부딪쳐 내연기관 전환이 늦었고 결국 독일과 프랑스에 자동차 산업의 주도권을 내줬다는 역사를 반면교사 삼고 있다. 이에 따라 그간 유럽에 진출하는 완성차 기업들의 생산 공장을 영국에 유치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토요타와 닛산 등이 영국을 선택했다. 연간 200만대 이상의 생산 능력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현재 영국 내에 있는 내연기관 완성차 공장 일부는 점차 중국 등의 전기차 전문 공장으로 탈출하려는 움직임도 뚜렷하다.
이런 가운데 전동화의 필요성이 대두되자 영국 정부는 과거와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내연기관의 저항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해 빠른 전동화 정책을 통해 전기차 부문에서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여야를 떠나 영국 정부가 "자동차위원회(Automotive Council)"을 만들고 500조원의 전동화 R&D 자금을 조성한 것도 전기차로 새로운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결과물이다. 자동차위원회는 독립된 기관으로서 조성된 자금은 정부와 여당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게 핵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낵 정부는 내연기관 판매 금지를 5년 연장하면서 동시에 전기차 판매 의무화를 도입했다. 한편에선 내연기관의 빠른 축소 부담을 줄이되 다른 쪽에선 전기차 보급 활성화를 모색해 전기차 선두 전략을 이어가겠다는 심산이다. 게다가 전기차 의무 판매 비중은 2026년 33%, 2028년 52%, 2030년 80%, 2035년은 100%로 상향된다. 그리고 해당 규정에는 영국 내에서 연간 2,500대 이상 판매하는 모든 자동차 회사가 포함된다. 당연히 한국의 현대차와 기아도 대상이다. 의무화 비율을 맞추지 못하는 곳은 목표를 초과 달성한 기업으로부터 탄소 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이때 기준 미충족 기업에게는 배출권 우선 구매 권한을 부여하기로 했다. 의무 비중이 적용돼도 기업의 존속 또한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국의 과감한 전동화 전략을 바라보는 다른 나라의 고민은 한결같다. 시기적으로 전환 시점을 늦출 수는 있지만 전동화로 바뀌는 대전제는 멈출 수 없어서다. 실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유럽연합과 미국 또한 전기차 수입 장벽을 높일 뿐 전동화를 거부할 수는 없다. 심지어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에 당선돼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전동화 속도만 늦어질 뿐이고 그럴수록 과거 영국의 마차 저항에 따른 실패 전략을 답습할 뿐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최근 전기차 구매가 주춤한 것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난무하다. 그리고 한국 또한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내연기관 저항에 무릎 꿇고 전동화 속도를 늦출 것이냐, 아니면 오히려 저항을 뚫고 높일 것이냐의 문제다. 영국은 후자를 선택했고 한국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전기차 의무 판매제를 검토하든, 아니면 내연기관에 추가적 세금을 붙여 전기차와 가격을 비슷하게 맞추든 해야 한다는 뜻이다. 비록 소비자들의 경제적인 부담, 그리고 이용자의 불편도 있겠지만 전동화는 가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기차 의무 판매제는 한국도 고려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보조금보다 오히려 의무 판매제가 보다 효과적일 수 있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