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전문기업도 포트폴리오 다양화 해야
흔히 배터리 업계를 분류할 때 소비자들이 가장 쉽게 접근하는 방식은 양극재다. 양극재를 기준하면 한국 기업들은 니켈, 코발트, 망간이 함유된 NCM 배터리에 매진하는 반면 중국 기업들은 인산과 철 소재의 LFP 소재를 주로 사용한다. 둘의 차이는 명료하다. 같은 용량일 때 어느 쪽이 전력을 배터리에 더 많이 담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이를 "에너지밀도"라 부른다. 이 부문에서 NCM 소재는 LFP 대비 유리하다. 하지만 소재 가격이 비싸다. 반면 LFP는 저렴한 게 장점이다. 물론 같은 용량일 때 더 많은 셀을 써야 하는 만큼 중량은 무겁다.
이렇게 생산된 배터리 셀을 구매해 사용하는 곳은 자동차기업이다. 어떤 셀을 사용할 것인지는 철저히 자동차회사의 제품 전략에 따라 결정된다. 가격이 중요한 차종에는 저렴한 LFP 셀을 사용하려 하고 비교적 가격 자유도가 높은 고가 차종에는 밀도가 높은 NCM 소재 셀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물론 각 나라의 장벽과 규제도 셀 구입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된다.
완성차기업이 어떤 셀을 사용하든지 선택을 했다면 해당 셀이 들어간 전기차를 최종 소비하는 주체는 소비자다. 이 말은 배터리 셀 제조사는 소비자와 직접 거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배터리 기업에게 중요한 고객은 완성차기업이다.
물론 완성차기업은 셀을 선택할 때 소비자 반응도 살핀다. 그리고 시장 초기에는 에너지밀도가 높은 것, 게다가 국산인 NCM 셀에 소비자들이 기대감을 가졌고 완성차기업도 소비자 선호도를 반영했다. 하지만 최근 이 공식이 흔들리고 있다. 전기차 소비자의 최종 선택은 셀 소재에 따라 좌우되는 게 아니라 전기차 제조사의 제품 기술과 브랜드, 그리고 가격이라는 점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서다. 일반 내연기관 제품처럼 전기차도 구매에 미치는 요소가 내연기관과 비슷해진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구입할 때 핵심 장치인 자동차 엔진 성능이 구매에 미치는 영향력은 5% 미만이다. 그나마 출력이 5% 미만일 뿐 최대 토크 숫자의 영향력은 3%도 되지 않는다. 특히 자동차를 처음 구매하는 소비자에게 엔진 성능은 전혀 고려 사항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전기차에도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으로 최근 국내에서 인기를 얻는 테슬라에 탑재된 배터리는 LFP 소재다. 그럼에도 대기자가 여전히 줄을 선 이유는 양극 소재가 더 이상 구매 때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예약자만 6,000명인 기아 레이 또한 LFP 소재가 사용된다. 전기차 시장 초기였다면 LFP라는 이유로 외면당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현상이 사라졌다. 결국 배터리 선택은 완성차의 몫이고 전기차를 구매하는 소비 시장은 또 다른 영역이라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국내 기업들도 LFP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단순히 NCM 용량을 키우고 줄이는 것으로 가격을 조절하는 게 아니라 소재 가격부터 원천 반영하는 것이 보다 많은 완성차기업의 선택을 받는 방법인 탓이다. 반면 LFP 소재에 주력하던 중국은 NCM 시장으로 점차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때 셀의 경쟁력은 기술과 가격인데 소재는 같더라도 생산 가격은 중국을 따라잡지 못한다. 이 말은 한국의 경우 기술에서 강점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단순히 셀 소재가 아니라 완성차기업이 판매하려는 전기차의 성격에 맞춰 셀의 특성을 결정하는 기술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국 배터리 포트폴리오의 다양화가 국산 배터리의 경쟁력을 높이는 요소가 된다는 뜻이다. 소비자는 전기차를 살 때 탑재된 배터리가 한국산인지 중국산인지, NCM인지 LFP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로 돌아서고 있으니 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