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분쟁, 석유로 옮겨붙을까 조마조마
법률이 정해 놓은 휘발유 및 경유 1ℓ에 부과하는 교통에너지환경세는 각각 475원과 340원이다. 하지만 탄력적인 조정도 가능하다. 2024년 말까지 최대 50% 범위 내에서 조정할 수 있다. 휘발유만 놓고 보면 최대 712.5원이 될 수도 있고 237.5원으로 정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법에 명시된 475원은 말 그대로 명시된 금액일 뿐, 때로는 최대와 최소의 차액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적용하는 휘발유의 교통에너지환경세는 397.7원, 경유는 238원이다. 475원에서 내린 게 아니라 529원으로 높인 후 26%를 감면한 금액이다. 경유 또한 340원에서 375원으로 조정한 뒤 37%를 감면했다. 엄밀하게 보면 법에 명시된 교통에너지환경세에서 휘발유는 약 16%, 경유는 30%를 내린 것과 같다. 하지만 이를 두고 유류세 인하 당시 정부는 휘발유와 경유의 유류세율을 각각 25%와 37% 내렸다고 설명했다. 숫자를 통한 혜택의 최대 착시(?) 효과를 노린 셈이다.
법에 따르면 한시적으로 시행했던 유류세액 감면은 이달 말에 종료되고 다음 달부터 교통에너지환경세는 휘발유 575원, 경유는 373원으로 되돌아간다. 이렇게 되면 정유사의 세후 공급가격은 9월 마지막주 기준으로 휘발유는 1,965원, 경유는 1,822원이 된다. 주유소를 거쳐 소비자에게 판매되는 과정이 배제된 금액인 만큼 실제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은 휘발유 기준 2,000원을 훌쩍 넘게 된다. 물론 이 금액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84달러 수준일 때를 나타낸다. 물론 정부는 감면을 올해 말까지 2개월 추가로 연장하기로 잠정 결정한 상태다.
하지만 최근 국제유가 상승 움직임이 주목된다. 모건스탠리는 연말까지 배럴당 150달러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해 6월 국제 유가가 118달러까지 올랐을 때 국내 정유사의 휘발유 세전 공급 가격은 최대 1,309원에 달했다. 만약 감면 혜택이 사라지고 유가가 당시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하면 휘발유 세후 공급 가격은 2,300원 수준이 되고 소비자는 주유소에서 ℓ당 2,500원 넘게 구입할 수도 있다. 모건스탠리 예상대로 150달러에 도달하면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유류세를 최대 50% 감면해도 소비자 지갑에선 ℓ당 2,300원보다 많은 돈이 지출돼야 한다.
물론 국제 유가는 변수가 워낙 많다. 기름을 많이 생산하는 사우디는 고유가를 유지하려 하지만 미국은 저유가를 원한다. 주요 산유국이 감산할 때 미국이 금리를 올리거나 비축유를 시중에 푸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제 유가에 대응이 가능한 국가의 이야기일 뿐 한국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은 국제 변수에 따라 변동되는 원유 가격을 지불할 뿐이다. 그나마 충격완화 장치가 있다면 그게 바로 교통에너지환경세의 탄력 조정이다. 하지만 유류세율을 통한 충격 완화 장치도 치솟는 국제 유가를 모두 감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와 이스라엘의 무력 충돌이 발생했다. 중동의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팔레스타인을 지지했고 미국은 이스라엘 편에 섰다. 미국과 적대적인 이란 역시 팔레스타인을 지지한다고 했다. 반면 중동 석유에 의존하는 서방 국가들은 이스라엘과 동맹을 과시한다. 외형적으로는 영토 기반의 이슬람과 유대교가 대립하는 종교 분쟁이지만 각 나라 이해 관계를 조절하는 역할로 석유를 빼놓을 수 없는 셈이다. 따라서 두 나라 갈등의 불똥은 앞으로 어디로 옮겨붙을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영향이 석유로 미치는 순간을 기다리는 곳도 있다. 바로 전기차 업계다. 기름 값이 치솟을수록 내연기관의 유지 부담이 증가해 전기차 구입 부담의 일부가 희석될 수 있어서다. 게다가 아직은 전기 이동 수단의 에너지에는 기름처럼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탄소 배출 저감을 위해 전기차 확대를 꾀하지만 정작 소비자 관점에서 전기차의 접근은 여전히 경제성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차 업계는 국제 유가의 폭등이 전기차 구매의 촉진제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물론 현실적으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낮다. 이른바 석유 전쟁은 모두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기차 제조사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간 전기차 구매를 늘리기 위해 오히려 내연기관차의 세제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탄소 중립을 위해 전기차 상용화가 시작된 만큼 운행 과정에서 "탄소 배출" 중심의 세제로 개편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일부에선 고속도로 버스전용차로에 전기차 운행을 허용해야 한다는 제안도 내놓고 민간 운영 주차장도 공영과 마찬가지로 전기차 주차 때는 할인을 적용하는 것이 보급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구매 과정의 부담이 늘어난다면 이용 과정에서 혜택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기본적으로 자동차 세금은 구매, 운행, 보유 단계별로 나누어 부과한다. 구매는 재산적 가치, 즉 가격에 따라 차등되며 운행은 기름을 많이 쓸수록 세금도 많이 내는 구조가 기본이다. 반면 보유는 재산 가치와 도로 이용료 개념이 동시에 포함돼 있다. 그런데 전기차는 기름을 쓰지 않아 운행 단계에서 세 부담이 적다. 여기에 추가로 부대 혜택을 주자는 논리다. 대통령실이 국민 의견을 받아들여 현재 배기량 기준 보유 단계의 자동차세제 개편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자동차세는 자치단체의 세수여서 큰 틀에선 금액을 건드리기 쉽지 않다. 그래서 운행 단계의 혜택은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중동 분쟁의 기름 값에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으니 말이다.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