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로 미국 감싸려는 중국, 장벽 치려는 미국
올해 1월1일부터 미국 내에서 1,000만원 가량의 보조금을 받는 EV는 쉐보레 볼트 EV와 EUV, 크라이슬러 퍼시키파 PHEV, 포드 F-150 라이트닝 2종, 테슬라 모델 3, X, Y 등의 5개 차종을 포함해 모두 10종에 머문다. 그리고 절반인 500만원 정도의 보조금 대상은 포드 이스케이프 PHEV, 짚 그랜드체로키 PHEV 4WD, 랭글러 PHEV 4WD, 링컨 코세어 그랜드 투어링, 리비안 전 차종 등 9종이다. 지난해까지 43종에 달했던 대상이 줄어든 배경은 생산지, 배터리 부품, 해외 우려 기업 지정 등 크게 세 가지다. 물론 보조금 대상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여전히 제조사별로 필요 서류 준비 과정에 시간이 걸리는 탓이다. 실제 캐딜락 리릭, 쉐보레 블레이저 EV, 폭스바겐 ID.4도 곧 보조금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IRA의 규정을 적극 적용하는 미국의 궁극적인 미래 모빌리티 전략은 글로벌 시장에서 EV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래야 먼저 시장 개척에 나섰던 중국의 EV 발전 속도를 낮추고 미국 주도의 자동차산업 패권을 유지할 수 있어서다. 석유에 대한 강력한 지배력으로 내연기관 중심의 세계 자동차산업을 좌지우지했던 미국으로선 중국의 EV 공격이 결코 탐탁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맹으로 여기는 유럽 및 한국, 일본산 EV도 보조금을 배제하는 강수(?)를 둔 것도 오로지 미국의 자동차 이익을 위한 선택이다.
그런데 미국의 보호주의를 뚫으려는 중국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동맹이라 불리는 모든 지역에 중국 EV를 진출시키려 한다. 필요하면 현지 공장을 설립하는데 어차피 부품과 소재는 중국에서 조달하는 만큼 큰 틀에선 중국 EV가 미국의 내연기관을 둘러싸는 형국이다. 게다가 중국은 해외 진출 기업을 대상으로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기도 한다. 특정 시장이 보조금으로 장벽을 높이면 수출 지원으로 장벽을 뛰어넘는 방식이다. 프랑스 등이 중국의 수출 보조금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둘 사이에 끼인 한국은 곤혹스럽다. 세계 자동차 시장의 절반을 차지하는 미국과 중국을 결코 배제할 수 없어서다. 게다가 연간 180만대 내외의 내수 규모는 해마다 줄어드는데 이제는 180만대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겁다. 인구 감소로 신규 소비 진입이 줄어든 데다 고령화로 자동차 구매력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한국차가 미국과 중국 시장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배경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국내 생산이 줄어 일자리가 사라진다. 일자리 축소는 세수 감소로 연결돼 국가의 재정 부담을 증가시키고 어떻게든 재정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부는 결국 젊은 층의 세 부담을 늘릴 수밖에 없다. 이런 경제적 부담은 다시 출산율 감소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이 전개된다.
흔히 "먹고 사는 것"과 "죽고 사는 것"을 분리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새로운 산업 패권 시대에는 "먹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도 통용된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단순히 먹는 게 아니라 "무엇을 먹느냐"도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하는 나라가 됐다. 따라서 어느 한 쪽으로만 올인하는 것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은 자동차를 해외에 팔아야 "먹고 죽지 않는 나라"로 이미 변모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EV 공세는 시장 규모를 가리지 않는다, 크든 작든 진출이 우선이다. 이때 내세우는 경쟁 항목은 가격이다. 소득의 많고 적음을 떠나 기본적으로 "가격"은 소비자들이 가장 최우선하는 항목이다. 그리고 가격 면에서 한국 EV가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EV와 경쟁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한국 EV는 브랜드와 제품력으로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차그룹이 중국 전략을 브랜드 중심으로 재편한 것도 가격의 직접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 보호와 중국의 문어발식 EV 확산이 자꾸 한국의 자동차산업을 위협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설 뿐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