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반의 강력한 소프트웨어 중심 전환 선언
곳곳에 새겨진 수식어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는 "SDV(Software Defined Vehicle)"다. 우리 말로 직역하면 "소프트웨어로 정의되는 자동차" 정도로 해석된다. 그런데 엄밀히 보면 SDV는 제조사 관점의 해석이다. 제조물로서 자동차에 소프트웨어를 강력하게 심어 휴대전화처럼 성능을 업데이트하고 인스트루먼트 조명 색상을 바꾸며 다양한 편의 기능 활성화 여부를 선택 적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을 다른 관점으로 해석하면 "그래서 소비자에게 뭐가 좋은 건데?"라고 반문할 수 있다. 이때 제조사는 크게 세 가지 장점을 늘어 놓는다. 첫째는 공간의 활용성이다. 소프트웨어가 중심인 만큼 구동에 필요한 하드웨어를 줄여 공간을 넓게 가져갈 수 있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새로운 경험 제공이다. 디지털화 된 자동차 실내 분위기를 수시로 업데이트 할 수 있어서다. 세 번째는 개인 맞춤형이다. 운전자와 자동차의 소통 능력을 고도화해 일종의 개인화 된 비서 역할을 자동차에 부여하려 한다. 하지만 이 세 가지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추진 중이며 미래에도 당연하게 가야 할 길이다. 그래서 SDV를 두고 "좋다, 나쁘다"를 평가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모빌리티 관련 기업들이 2024 CES에 한결같이 내건 슬로건은 사람을 위한 미래의 청사진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일할 사람이 부족해지는 만큼 로봇의 역할을 강화하고 통신 기반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원격 조종 또는 운전을 가능하게 하며 이동하는 것과 고정된 것을 서로 연결해 하나의 공간으로 인식시키려 한다.
물론 집에 고정된 가전 제품과 이동 수단의 연결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동하는 것, 즉 모빌리티는 이동에 있어 정확한 목적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모빌리티와 가전 제품 연결은 생활의 편리함을 부여하지만 없어도 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결국 제조사는 이용자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동하느냐를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이동 수단을 제공하려는 기회를 찾을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PBV로 나타난 셈이다. 기아가 CES2024에 PBV의 여러 종류를 내놓으며 시장을 이끌겠다고 선언한 배경이다.
동시에 한편에선 에너지 전환을 대비한다. 하지만 방향성은 조금씩 다르다. 기본적으로 모든 기업들이 동의하는 것은 기계의 움직임이 전기에 의존한다는 사실이다. 실제 대형 건설 기계도 점차 전동화의 문턱을 넘으려 한다. HD현대가 2030년 전동 건설 기계를 내놓겠다고 발표한 것도 전기 에너지 사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여기고 있어서다. 그런데 여기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전기를 무엇으로 만들까를 함께 고민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과거와 현재가 석탄, 천연가스, 원자력 등에 기반한다면 이제는 수소를 인류 미래의 궁극 에너지로 삼으려는 곳이 부쩍 늘었다. 아예 바다 위에 수소 생산 공장을 짓고 태양광 또는 풍력 전기로 수소를 만들어 육상으로 이송하는 계획도 쏟아진다.
물론 수소는 여전히 비싸다. 그러나 CES2024에 참여한 여러 기업들은 기술 발전이 모든 제품 또는 에너지 가격을 낮출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다. 오히려 화석연료 가격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친환경에 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오염원에 징벌적 비용을 높이는 것이 보다 환경친화적 정책이라고 말한다. 당연히 어떤 것이 낫다고 당장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CES2024가 보여준 모빌리티 부문의 화두는 결국 소프트웨어가 경제적 또는 환경적으로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라스베거스=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