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V 새로운 경쟁자는 계속 늘어
지난 2022년 11월 태국 촌부리 지역의 넓은 산업단지의 한 장소에서 전기차 공장 설립 기공식이 열렸다. 공장을 짓는 곳은 ‘호라이즌 플러스(Horizon Plus)’라는 기업이다. 당시 기공식에는 태국 국영에너지그룹 PTT와 대만의 폭스콘그룹 고위 관계자가 대거 참석했다. 이유는 공장을 짓는 호라이즌 플러스의 주주가 바로 태국의 PTT와 대만의 폭스콘이었기 때문이다. 태국은 자체 브랜드의 전기차를 만들기 원하고 전기차 개발을 마친 폭스콘은 시장 확대를 바란다는 점에서 이해 관계가 맞아 떨어진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석유기업인 태국 PTT그룹이 전기차 직접 제조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공장이 완공되면 2030년 연간 최대 20만대 생산에 도달하고 충전기 7,000기를 설치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이를 위해 1조5,000억원 가량을 투자한다는 계획도 정부로부터 이미 승인됐다. 일본 기업의 CKD 공장에서 벗어나 태국 또한 국산 BEV를 내세워 자동차산업의 후발 주자로 정식 참여하겠다는 의지다. 동시에 태국은 2050년까지 친환경 수소와 암모니아를 생산해 수소를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삼겠다는 미래 에너지 전략도 함께 발표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18년, 튀르키예 정부는 통신사, 가전기업, 증권거래소, 철강사 등을 독려해 토그자동차(Togg)를 설립시켰다. 현대차를 비롯해 많은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연간 150만대의 완성차를 조립 생산하는 국가지만 독자 브랜드가 없었다는 점에서 ‘토그’를 튀르키예의 국산차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강력하다. 지난해 CES에 소형 전기 SUV T10X를 공개했고 올해는 전기 세단 T10F를 추가했다. 같은 유럽권에 속해 있는 만큼 북유럽과 서유럽에 토그 제품의 수출을 적극 추진하는 중이다.
베트남 자동차기업 빈패스트(Vinfast)는 그나마 조금 알려진 신생 기업이다. 2018년 파리모터쇼에 첫 차를 공개할 때만 해도 대량 생산 가능성이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베트남 내에서 당당히 국산차로 주목받고 있다. CES 2024에 경차급 전기 SUV VF3를 내놓고 미국 시장용 픽업 전기 트럭 컨셉트 "와일드(Wild)"를 내세우는 등 빈패스트는 해외 공략 국가로 미국을 설정했다. 미국 현지 공장 설립에도 착수, 빠르게 영역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중동으로 가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씨어(Ceer)"가 있다. 기름 판매로 축적된 자본을 중심으로 폭스콘과 합작, 자체 전기차 기업을 만들었다. 게다가 사우디 국부펀드는 이미 미국의 전기차 스타트업 루시드모터스의 대주주다. 사우디아라비아 또한 이른바 "국산 전기차"를 만들어 내수는 물론 인근 중동 국가로의 수출을 노린다. 동시에 빠른 전기차 기술 습득을 위해 중국의 휴먼 호라이즌스과 협력을 하기도 한다. 휴먼 호라이즌스는 "하이파이(HiPhi)"라는 전기차를 만들어 판매하는데 특징은 고도의 지능화다. 이미 4단계 자율주행 기능을 적용할 정도로 AI 개발에 적극적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독자 브랜드가 없었던 국가들이 BEV를 토대로 시장 진출에 나서자 이번에는 배터리 제조사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세계 최대 배터리기업 CATL은 아직 BEV 직접 제조에 나서지 않지만 배터리팩과 샤시를 일체형으로 만든 하드웨어 플랫폼을 필요한 기업에 제공한다. BEV 시장 진출을 원하는 기업은 일체형 플랫폼을 도입해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생산만 할 뿐이다. 현재 갖춰진 제품군은 소형 및 중형급의 상용 플랫폼이다.
결과적으로 새롭게 BEV 시장에 진출하는 모든 기업들은 잠재적으로 한국 BEV의 경쟁자다. 오랜 시간 내연기관 시장 내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쳐왔던 토요타, 폭스바겐, GM, 포드 등과는 또 다른 존재다. 그만큼 우리에겐 BEV 경쟁자 스펙트럼이 다양해진다는 의미다. 내연기관에서 전동화로 전환하는 기업과는 연장전을, 새로운 도전자와는 그들의 안방 또는 주변 지역에서 새로 맞서야 한다. 그런데 그들에게 신생 브랜드는 "국산"이지만 한국산은 외산이다. 그래서 전동화 과정은 매우 험난하다. 과거와 전혀 다른 경쟁 양상이 펼쳐지는 탓이다. 그만큼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제는 새로워야 한다. 하지만 BEV를 바라보는 관점이 자꾸 국내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걱정될 뿐이다.
권용주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