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전기차 부문 "보급 vs 보호" 신중해야
지난해 환경부가 전기차 보조금 기준을 정할 때 눈여겨 본 부문은 국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한 중국산 전기 버스다. 이때 보조금 차등 지급 기준으로 삼은 것은 전기 버스에 탑재된 배터리의 에너지 밀도, 즉 전기 저장 능력이다. 많은 전기를 담지 못하면 보조금을 줄였고 그 결과 에너지 밀도가 불리한 LFP 배터리가 탑재된 중국산 전기버스는 보조금이 30% 삭감됐다.
그런데 당초 환경부가 계획했던 배터리 에너지 밀도 기준의 보조금 삭감율은 원래 50%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중국 정부가 공식 항의를 표시했고 이를 받아들여 50%에서 30%로 한발 물러났다는 게 후문이다. 그렇다면 에너지 밀도 기준을 강력하게 밀었던 환경부는 당시 왜 물러났을까? 이유는 국내 배터리 기업에 대한 중국의 공급망 우려였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중국산 전기버스를 타깃으로 에너지 밀도 기준을 도입하자 중국 내에서 한국 배터리 기업에 공급하는 양극재와 음극재 등의 공급 조절 대응이 언급됐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내 배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생기고 오히려 한국산 전기버스에 필요한 배터리 공급이 중단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기차 산업 보호를 위한 기준 도입이 오히려 위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보 후퇴했던 셈이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업계에선 환경부가 올해 추가로 전기버스에 적용하던 에너지 밀도 기준을 승용과 트럭으로 확대한다는 소식이 퍼졌다. 아직 확정된 사항은 아니지만 산업 보호를 위한 환경부 의지가 강하다는 얘기도 들린다. 에너지 밀도 뿐 아니라 배터리의 재활용 가치도 보조금 기준 항목에 넣겠다는 방안까지 업계에 전달됐다. 한 마디로 중국산 LFP 배터리의 보조금을 줄이겠다는 것인데 엄밀하게는 지난해 연간 1만대 이상 판매된 중국산 테슬라를 겨냥한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자 완성차 업계 내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는 중이다. 특히 가격 경쟁력을 위해 중국산 LFP 배터리를 채택한 KG모빌리티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물론 LFP 배터리를 적용한 현대차와 기아도 있지만 소형 차종에 한정돼 상대적으로 영향은 크지 않은 반면 KG모빌리티는 앞으로 쏟아낼 모든 주력 전기차에 BYD가 만든 LFP 배터리를 탑재하기 때문이다. 보급 확대를 위해선 가격 경쟁력이 필요하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LFP 배터리의 선택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 같은 계획을 두고 국내에서도 의견은 분분하다. LFP 배터리 채택으로 가격을 낮추려는 제조사들의 보급 확대 의지가 약화될 수 있어서다. 이 경우 전기차 보급은 더뎌지고 그만큼 전체 전기차 산업 전환 속도 또한 늦춰지기 마련이다. 반면 환경부는 보급 속도가 중요하지만 배터리 자체도 폐기물인 만큼 최대한 재활용을 높이는 것 자체가 환경 보호라는 명분을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를 앞세운다.
LFP 배터리에 대한 보조금 삭감은 중국산을 겨냥한 조치가 아니라 환경을 위한 보호 조치이고 환경부로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는 설명에 비중을 둔다. 따라서 업계의 시선은 중국의 태도에 집중되고 있다. 환경을 이유로 LFP 배터리에 불리한 기준을 도입할 때 배터리 공급망에 대한 중국의 입장 변화다. 지난해처럼 양극재와 음극재 등 배터리 생산에 필수 소재 공급에 차질이 생길 지에 대한 우려다.
배터리 소재가 아니라면 다른 부문이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대표적인 품목이 요소수 생산에 필요한 요소 공급이다. 한때 중국산 요소가 수입되지 않아 요소수 대란이 벌어졌던 과거를 떠올리면 대응 방안은 많기 때문이다.
환경부의 방안이 아직 확정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에 미칠 파장이 워낙 큰 데다 결과적으로는 중국산 LFP 배터리에 불리하다는 점에서 중국 정부의 태도 변화에도 기업들의 촉각은 곤두 서 있다. 한 마디로 "보급 vs 보호"에서 "보호"를 선택한 셈인데 이때 불이익을 받는 국가도 "보호"를 하겠다고 나서면 자칫 보급과 보호 모두를 놓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기차 산업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서 시장이 작은 나라일수록 ‘보호’보다 ‘보급’이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박재용(자동차 칼럼니스트,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