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800만대 찍고 지난해 9,010만대
2015년만 해도 연간 글로벌 자동차 판매가 곧 1억대를 넘을 것으로 기대했다. 한국모빌리티산업협회 세계자동차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글로벌 자동차 판매는 처음으로 9,100만대에 도달하더니 2016년에는 9,600만대, 2017년에는 9,860만대까지 빠르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지켜본 모든 제조사는 글로벌 산업수요 1억대 이상을 바라보며 생산 규모를 늘렸다.
하지만 2019년 9,200만대로 수요가 감소하더니 코로나 위기가 닥친 2020년에는 무려 1,000만대 이상이 줄어든 7,800만대로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2022년 8,540만대로 회복세를 보였고 지난해 다시 9,000만대를 간신히 넘겼다. 그리고 올해 완성차업계는 9,200만대, 나아가 9,400만대까지 전망하며 시장 대응 준비에 착수했다.
흥미로운 점은 제조사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낙관적인 9,400만대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현장에서 만나는 소비자, 해외 수출국 현지 반응 등을 고려할 때 세계 자동차 판매가 1억대를 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1억대가 넘으려면 소득 증가를 경험해야 하는데 이때 발생 가능한 변수가 한 둘이 아닌 탓이다. 지금은 기름 값이 저렴하지만 이미 중동 분쟁이 다시 상승을 촉발시키는 중이고 수요를 견인하던 중국은 부동산 침몰로 소득이 오히려 감소할 전망이다.
그나마 수요 확대를 기대하는 곳은 동남아 시장인데 최근 이 지역은 내연기관보다 전기차 전환을 서두른다. 사시사철 따듯한 기온 덕분에 배터리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지 않는 데다 정부 주도의 급속 충전 인프라 확충이 빠르게 진행되는 덕분이다. 하지만 전기차 가격이 비싼 점은 걸림돌이다. 따라서 제아무리 전기차 보급이 늘어도 글로벌 1억대 문턱을 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는데 동의한다.
산업 수요가 늘어나지 않으면 한정된 시장 내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그리고 경쟁에 필요한 것은 제품 뿐 아니라 비용도 포함된다. 그리고 비용은 자동차를 판매한 이익에서 충당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기차 판매에 따른 이익률은 여전히 낮다. 결국 내연기관을 최대한 많이 판매한 이익으로 전기차 투자비를 충당해야 하는 셈이다. 최근 제조사마다 앞다퉈 내연기관의 연장선으로 HEV 확대에 치중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동시에 내연기관의 수익성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으로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을 활용한다. 제품에 프리미엄 브랜드 가치가 형성되면 비싼 값에 자동차를 판매할 수 있고 그만큼 이익이 증대한다. 하지만 이때 고민이 발생한다. 내연기관은 이용자 편의성에 전혀 문제가 없어 브랜드 제고 전략이 통할 수 있지만 전기차에 프리미엄 가치를 넣을 때는 인프라 등의 이용자 편의성이 가치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차의 제품 가치가 높아도 인프라 부족 등의 이용자 편의성이 낮을 경우 오히려 프리미엄 효과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리미엄 제조사마다 전기차 확대의 최대 고민은 충전의 차별화다. 어떻게 하면 충전이라는 행위에 프리미엄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기업마다 충전 차별화 전략을 고민하지만 마땅한 묘수는 없다. 그나마 충전 속도가 빠른 초급속 충전기를 곳곳에 많이 설치하는 것이 현재의 방식인데 편의성만 고려하면 이용자가 많은 곳에 충전기를 설치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래야 이용에 불편함이 없고 소비자 관점에서 프리미엄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지 않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비용이다. 초급속 충전기의 비싼 가격, 그리고 충전 장소의 임대료 등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충전기의 유지 관리비도 감안해야 한다. 전력 유통 수익에서 해당 비용을 충당하면 되지만 회수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다. 환경부가 민간 사업자의 급속 충전기 설치 사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이용 편의성 확충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연간 1억대가 넘지 않는 시장 내에서 전동화 압박이 커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제조사는 HEV와 BEV만 제품군만 남겨 놓고 100% 내연기관 제품은 아예 단종할 수도 있다. 내연기관의 연장선에서 HEV로 수익을 얻어 BEV에 투자하는 식이다. 이때 HEV가 제품군에 없는 회사는 상당한 위기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데 대표적으로 BEV만 만드는 기업이 지목된다. 전기차 판매를 확대하는 중국의 BYD가 PHEV를 놓지 않는 것도 HEV 전략의 일환인 반면 BEV만 제조하는 테슬라는 HEV가 없어 고민이다. 게다가 BEV 판매 경쟁은 해마다 더욱 치열해지는 중이다. 테슬라에 새로운 제품이 추가돼야 한다는 의견이 끊임없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BEV만 제조하는 기업의 경우 전기차 판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이익은 줄고 투자비 부족으로 제품 교체 주기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테슬라에게도 연간 1억대 돌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전체 규모가 커질수록 전기차 시장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세계 자동차 판매가 1억대를 정말 넘을 수 있을까? 10년째 기대하는 전망이지만 10년째 이루지 못한 꿈(?)이기도 하다.
권용주 편집위원